“뮌헨 참패 아쉽지만 평창 겨울올림픽 땐 꼭 와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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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 빌리 보그너 회장이 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등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007 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에서 제임스 본드가 스키를 타고 질주하며 적을 따돌리던 모습을 기억하시는지. 눈 덮인 알프스를 활강하던 본드가 돌연 절벽으로 점프하던 모습은 지금까지 007 영화의 짜릿한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그 스키 장면을 감독한 이가 빌리 보그너(Willy Bogner·69), 독일의 유명 스포츠웨어 보그너의 회장이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를 포함해 4편의 007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올림픽 스키 선수 출신인 보그너 회장은 지난해엔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전에서 강원도 평창의 호적수였던 독일 뮌헨의 유치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사장 최정화) 주최로 4~6일 열린 문화소통포럼(CCF)에 초청돼 한국을 찾은 그는 방한 첫날인 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과 조양호 평창 유치위원장을 각각 만나 “평창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 자리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해 4월 두바이에서 뮌헨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인터뷰했을 땐 뮌헨의 승리를 다짐했었는데.

 “사실 평창을 이길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평창이 63표를 얻는데 뮌헨이 25표밖에 못 얻을 줄은 예상 못했다. 평창의 세 번째 도전이 빛을 봤듯 뮌헨도 재도전할 것으로 희망한다.”

 - 지난 9월 건강을 이유로 유치위원장직에서 돌연 사퇴해 궁금증을 남겼다. 유치위 내부 불협화음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유치위원장으로서 소화해야 하는 무리한 출장 일정 등이 건강 악화를 가져와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뮌헨 토박이로 겨울스포츠광인 나로선 아쉬운 일이었다.”

 - 007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순백의 설경에서 맛볼 수 있는 스키의 짜릿함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취미였던 비디오 촬영에 착안해 스키 영화를 찍는 모험을 했다. 당시로선 실험적 방법도 도입했다. 스키 스틱 위에 소형 카메라를 고정시켜 활강하면서 속도감을 직접 전달했다. 친한 동료 선수들을 출연시켜 색색의 스키복을 착용한 채 음악에 맞춰 활강하도록 하는 장면도 찍었다. ‘스키 패시네이션(Ski Fascination)’이란 제목으로 완성해 스크린에 올렸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얼마 후 007 영화 제작팀에서 전화가 왔다. 스키 장면을 넣을 건데 박진감 있게 연출해 달라는 주문이었고, 당연히 응했다. 최근엔 360도로 감상할 수 있는 3D 스키 영화도 제작 중이다.”

 - 열여덟 살이던 1960년 올림픽 무대에 데뷔해 각종 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아버지 역시 올림픽 독일 대표로 뛰었는데 패션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패션 디자이너인 어머니가 젊었을 당시만 해도 스키복은 군복이나 작업복과 다를 바 없이 밋밋했다. 아버지가 스키 선수이다 보니 함께 스키를 즐기고 싶다고 했는데, 벙벙한 바지를 본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세상에, 난 이런 안 예쁜 옷은 절대 안 입을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웃음). 그리곤 여성 스키복을 직접 디자인했다. 오늘날 많이 입는 타이트하고 아름다운 색상의 스키복이다.”

 -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도 와볼 생각인가.

 “물론. 뮌헨이 평창에 진 건 아쉽지만 2018년 평창의 겨울올림픽은 아시아 스포츠의 일대 부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스포츠 전반으로 봐도 좋은 일이다. 나도 겨울스포츠 선배 선수로, 또 순수한 팬으로 와서 응원 할 거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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