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허준의 아름다운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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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의 음식에 비긴다면 드라마의 줄거리는 밥이요, 볼거리는 반찬이다.

MBC드라마〈허준〉이 소문난 잔치가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쫀쫀한' 이야기와 눈길을 사로잡는 '촉촉한' 풍경이 사이좋게 어울렸기 때문이다.

섬세한 시청자라면 고난의 길(결국은 성공한다)에 동행하는 음악의 자취, 혹은 미술적 배려 또한 소홀하게 흘려버리지 않았을 터이다.

인물들의 성격 또한 입체적이다. 매력있는 조역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특별히 〈허준〉에는 영화〈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시기한 샬리에르형 인물 둘이 등장해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길을 매끄럽고 탄탄하게 한다.

김병세가 연기하는 유도지와 조경환이 맡은 양예수가 그들이다. 그들은 허준과 유의태에 비해 재능은 턱없이 부족하고 열정은 그릇에 넘친다.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유머와 관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엄숙하고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그래서 그들을 둘러싼 삶은 오히려 비극적이다.

다큐멘터리〈성공시대〉를 보면 성공의 비결은 '자신의 재능을 십분 활용하되 남을 해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한다' 로 요약된다. 주인공은 시대를 탓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실패에 대해서까지도 '두려움 없는 사랑' 이 있다. 허준의 '성공시대' 또한 예외가 아니다.

홍길동에게 도술이 없었다면 그의 자존심은 단지 꿈 속에 갇혀 허우적댔을 것이다. 허준의 도깨비방망이는 신비한 의술이다.

그는 닷새 만에 반위(위암)를 거뜬히 풀어낸다. (그런 팬터지가 드라마에 몰입함을 가로막는가. 그가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박씨와 연꽃이 흥부와 심청을 가난과 장애로부터 구해낸 것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가. 허준은 슈퍼맨이다. 슈퍼맨을 흉내내어 높은 데서 떨어질지도 모를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낙하산을 달아줄 필요는 없다. )

드라마〈허준〉은 사랑을 준 어머니와 지혜를 준 스승에게 은혜를 갚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분별없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복수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처절한 복수는 화해와 용서라는 진리를 허준은 일깨워 준다.

드라마가 인기 있다는 것은 뭇 사람들의 기를 긁어모았다는 뜻이다.

드라마를 시청할 땐 허준이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랑의 실천, 자비와 관용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TV를 끈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드라마는 드라마고 세상은 세상이다" 라며 그 달아오른 기를 무참히 꺾어버리는 시청자의 단호함이 약간은 야속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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