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행복한 책읽기] 너희가 축구의 위대함을 아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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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원제 How Soccer Explains The World
프랭클린 포어 지음, 안영희 옮김
말글빛냄, 352쪽, 1만5000원

피버 피치
원제 Fever Pitch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문학사상사, 380쪽, 9500원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국가 간의 전쟁에 비유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다. 왜냐하면, 축구는 그런 일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원로 축구 학자 빌 샨클리의 말이다.

좀 심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아니다. 축구는 그럴 찬사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다른 것은 다 접어두고 이것 하나만 이야기하자.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를 이루는 가장 확실한 길이 무엇인지를. 축구는 세계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인류가 간직한 단 하나의 사회통합 수단이다.

기독교나 불교,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의 심오한 가치를 한 권의 책 속에 온전히 담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일 터이다. 그러나, 한 조각의 참 맛을 보여주는 정도라면 간혹 욕심을 부릴 수도 있겠다. '축구는 어떻게…'와 '피버 피치' 두 책은 그런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미국의 언론인인 프랭클린 포어는 세르비아와 스코틀랜드, 우크라이나와 이탈리아, 그리고 브라질과 이란으로 이어진 긴 취재 여행을 통해 축구 문화론을 헌정하였다. 축구는 이미 세계인들의 삶 깊숙이 침투한 사회제도이며,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분리가 불가능한 삶의 일부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삶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축구에 녹아든 민족주의, 정치문제, 인종차별, 종교 갈등만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역으로 축구라는 필터를 통해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한 시도에 고개를 숙인다. 한 나라의 축구는 그러므로 그 사회의 현재 상황과 과거사, 미래로의 발전 가능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동체의 종합 건강진단서라는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예컨대 이란을 보자. 이슬람 혁명 이후 여권이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이란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여권 신장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국가적 경사를 맞아 더 이상 집 안에 갇혀있기를 단호히 거부하고, 차도르를 벗어 던지며 거리의 축제에 동참하는 여성의 행렬! 거듭 찬탄이 나오는 대목이다.

'축구는 어떻게…'가 객관적 보고서라면, '피버 피치'는 평생을 아스날 팬으로 지내야하는 축구팬의 이야기다. 운명과 숙명에 저항하는 건 부질없는 짓, 팀에 대한 충성심은 사마귀나 혹처럼 일단 생겨나면 떼어낼 수 없는 것이며 결혼 만큼이나 융통성 없는 관계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 팀의 2부리그 탈락을 막은 선수의 동상을 세워 그 업적을 길이 기념하자는 편지를 시의회로 발송하고, 일 년 중 아홉달은 경기 일정표와 TV 중계 시간에 맞춰 삶을 영위한다. 심지어 아들의 결혼식이 국가대표팀 경기와 겹치지 않기를 기대하는 한편 만약 일정이 겹친다면 아들의 결혼식을 비디오로 볼 것이라는 이야기를 매우 당연하고 상식적인 듯 시종한 대목은 마음에 걸리지만,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 그만 목이 메인다. '축구를 보는 것은 결코 수동적 활동이 아니며, 실제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팀이 나의 일부이듯 나도 팀의 일부다.'

'축구는 어떻게…'에 대해 잔소리를 하나 덧붙이기로 하자.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축구에 대한 전문성 부재에서 기인한 오역이 눈에 걸린다. 아스날을 아세날로, 결승골을 결정골로, 아시안컵을 아시아 국가컵으로 옮긴 대목은 사소한 실수지만 1998년 인터밀란과의 리그 마지막 경기를 '결승전'으로,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오만이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물리쳤다고 한 부분은 독자의 혼란을 유발한다. 이란이 1998년 월드컵 본선에 처음 진출했다고 다소 애매하게 기술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이란은 1978년에 월드컵 본선에 처음 나갔다. 한국은 그 때 아시아지역 2위, 간발의 차로 분루를 삼켰나니, 테헤란에 벌어진 원정경기가 열리던 날 이리역에서 거대한 폭발사고가 있었다. 차범근과 허정무와 김재한과 말년의 이회택, 테헤란에서 두 골을 득점해 2 대 2 무승부를 이끌었던 이영무에게 축복을! 자,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이다.

장원재 교수<숭실대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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