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꾸라지 열풍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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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총리

‘미꾸라지 총리’로 불리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54) 일본 총리의 ‘전방위 저자세’ 전술이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자신의 이미지 관리, 내각 인선, 대야 관계, 외교 관계까지 그의 행동과 언어를 지배하는 원칙은 “일단 숙여” “낮은 포복”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총리직이 걸린 8월 말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미꾸라지가 금붕어의 흉내를 내봐야 어쩔 수 없다. 미꾸라지처럼 땀을 흘리며 투박하게 정치를 전진시키겠다”고 몸을 낮추면서 의원들에게 결정적으로 어필했다. 서민 출신인 그가 내건 ‘미꾸라지’란 화두는 일본 정계는 물론 예술계, 심지어 식당가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노다의 미꾸라지 발언은 시인이자 서예가인 아이다 미쓰오(相田みつを·1924~91)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의 발언 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아이다 미쓰오 미술관’의 관람객은 평소의 1.5배인 1500명으로 불어났다. 문제의 시가 실린 시집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출판사는 1만 부를 증쇄하기로 결정했다. 시마네(島根)현 야스기(安來)시 등의 미꾸라지 양식장에 주문도 쏟아지고 있다. 도쿄 시내 미꾸라지 음식점들의 매출이 늘어났다는 일본 TV의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노다는 취임 후 첫 주말인 3일에도 ‘서민 마케팅’을 이어갔다. 도쿄시내 도라노몬(虎ノ門)의 ‘10분에 1000엔(약 1만3500원)’ 이발소를 찾았고, 기자들에게 “머리를 깎아 개운하다”고 한마디를 했다. 역대 총리들은 보통 1만 엔이 넘는 호텔 이발소나 총리 관저 내부 시설을 주로 이용했다. 일 언론들은 “재무상 때도 1000엔 이발을 선호했는데 총리가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고 호평했다.

 90도 인사도 그의 전매특허다.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 때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부의 공식회의 때도 그는 90도 인사를 한다. 일본TV의 ‘뉴스쇼’ 프로그램은 노다 총리의 90도 인사 장면을 잔뜩 모아 편집한 뒤 마치 버라이어티 쇼의 기법처럼 화면 하단에‘禮’(예·예의를 지킨다는 뜻으로 일본에서는 ‘礼’로 씀)라는 자막과 함께 내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미꾸라지 전략이 먹힌 때문인지 4일 일제히 발표된 일본신문들의 대국민 여론조사는 노다 내각의 출범에 무난한 점수를 주고 있다.

내각 지지율은 신문 조사 결과 니혼게이자이 67%, 요미우리 64%, 마이니치 56%, 아사히 53%로 각각 나타났다. 출범 직후 70%대를 기록했던 하토야마 내각보다는 좀 낮고, 직전 간 나오토 내각 초기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노다 총리 본인이 과거 재일 한국인 두 사람에게서 30만 엔(약 415만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자신이 지명한 이치카와 야스오(一川保夫.69) 방위상이 취임 첫날 “내가 안전보장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문민통치”라는 실언으로 망신을 당하는 등 정권 내 불안 요소들도 적지 않다.

 몸 낮추기 전략은 내치뿐 아니라 대외관계에도 적용되고 있다. 재무상 시절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은 전쟁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해서 한국·중국을 들끓게 했지만 총리에 지명되자 “재임 중 야스쿠니 공식 참배는 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또 과거 “미국에도 한 방을 먹이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태도를 바꿔 “미·일동맹이 외교의 축”이라며 연일 친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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