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꼬리 자르기? … 회계책임자 이보훈 돌연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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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2일 서울 화곡동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곽 교육감의 집을 나서고 있다. [안성식 기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검찰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지난해 후보단일화 발표 직전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 측과 협상했던 곽 교육감(후보)의 회계책임자가 이면(裏面) 합의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곽 교육감의 선거자금 곳간을 관리한 핵심 인사가 박 교수에게 선거 대가를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보고하지 않아 곽 교육감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곽 교육감 측이 ‘후보 매수’ 의혹을 실무자 책임으로 돌리는 ‘꼬리 자르기’로 보고 있다.

 곽 후보 측 공식 회계책임자였던 이보훈(57)씨는 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교수 캠프 양모씨에게 박 교수를 돕겠다고 약속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지원 액수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는 “밝히기가 그렇다”고만 했다.

 이씨는 박 교수 측 선대본부장이던 양씨와 동서지간이다. 지난해 5월 18일 박 교수와 곽 교육감이 회동한 협상이 돈 문제로 결렬된 후 별도로 만나 박 교수에게 돈을 지원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는 다음 날인 19일 단일화를 발표했다.

 이씨는 “곽 교육감은 지난해 10월 박 교수가 약속 이행을 거칠게 요구하고 나온 뒤에야 내가 약속해준 것을 알게 됐다”며 “(곽 교육감이) 거의 기겁을 하고 굉장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씨와 합의한 양씨 측은 단일화 직전 막판 협상 자리에 두 사람 외에 곽 후보 측 최갑수 선대본부장도 함께 있었다고 밝혔다. 양씨는 이날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양씨 측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박 교수가 단일화 직전 돈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부탁해 양씨가 곽 후보 선거사무실을 찾아가 이보훈씨와 최갑수 교수를 만났다”며 “각서를 쓰거나 하진 않았지만 금전 보상 등에 대한 약속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곽 교육감은 몰랐다”는 이씨 주장에 대해 “마지막 협상에서 가장 민감했던 게 돈 문제인데 어떻게 됐는지 점검도 하지 않고 후보들이 단일화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40억원이 넘는 선거자금을 관리했던 이씨는 박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넨 강경선 방송대 교수, 곽 교육감과 서울대 법대 72학번 동기다. 농사를 짓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이씨는 자신을 ‘곽노현의 40년 친구’라고 소개했다. 곽 교육감 측근은 “세 명은 서로 존경하는 사이라고 말할 만큼 신뢰가 높다. 주변에서 ‘아름다운 3인방’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회계책임자인 이씨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곽 교육감은 직격탄을 맞는다. 이씨가 박 교수 측에 돈이나 공직을 약속했다면 후보자 매수 혐의죄(공직선거법 232조)가 성립된다. 같은 혐의로 징역형이나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곽 교육감의 당선은 무효가 된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사무장과 회계책임자 등 후보자와 밀접한 사람이 유죄로 판명되면 후보자 공모 여부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당선 무효와 선거보전비 반환 같은 연좌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교육감 선거에 나왔던 이원희 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은 당시 사무장이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이 확정돼 선거보전비 31억3700만원을 국고에 반납할 처지다.

  윤석만 기자

◆선거 연좌제(蓮坐制)=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사무장이나 회계 책임자, 직계존비속 및 배우자의 유죄가 입증될 경우 후보자가 법적 연대책임을 지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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