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우정이란 ‘자산’ 불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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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세 부류의 정신과 의사가 있단다. 약물치료만 하는 의사, 심각한 정신병리를 심리치료하는 의사, 그리고 일상적인 삶의 고통을 들어주고 조언하는 의사다. 한국에 와 있는 프랑스인으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생겼다. 일단 부러웠다. 최근 국내에선 ‘(신경)정신과’란 이름이 법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었다. 정신과란 명칭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보다 많은 사람이 편하게 정신과 의사를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동안 벽이 그만큼 높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러움과 함께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문화·철학이 발달했다고 그토록 자부하는 프랑스에서도 속마음을 털어놓으려면 ‘전문가’가 필요한 걸 보면 인간의 자연적인 공감 시스템에 장애가 생긴 게 아닌가 해서다. 인류의 ‘운영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겼다고나 할까.

 ‘맘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있느냐’고 물으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없다’고 답한다. 흥미로운 건 사회적 지위와 친구 수가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더 성취한 사람일수록 친구가 더 없다는 얘기다. “모두 내게 뭔가 부탁을 합니다. 돈이든, 취직이든…. 한두 번은 몰라도 반복되면 친구 만나기가 싫어져요.” “대부분 날 어려워해요. 터놓고 얘기하고 싶은데 자꾸 피하더군요.” 세상은 더 노력해서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라고 말한다. 그래야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철학자’로 불린다. 그래서 ‘에피큐리언(epicurean)’이란 형용사는 ‘쾌락(향락)주의의’란 뜻으로 쓰인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명품·요트·스파·리조트 등을 소개하는 ‘에피큐리언 라이프’란 잡지도 있다고 한다. 그럼 에피쿠로스는 정말 ‘에피큐리언 라이프’를 즐겼던 걸까? 그는 정원 주변에서 채소를 키워 식사를 하며, 그의 사상을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 검소한 쾌락을 추구하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준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그가 감성적 쾌락의 최고봉으로 꼽은 것은 성적 쾌락도, 명품도 아닌 ‘우정’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쾌락 전문가의 말이니 한 번 믿어봐도 될 듯싶다. “무엇을 먹고 마실지 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지를 고려해 보라. 친구가 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늑대의 삶이다.” 나는 에피쿠로스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혼자 맛집을 찾아다니는 외로운 미식가가 되고 싶진 않다.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친구 만들기다. 요즘 같은 고령화 사회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일과 가정을 핑계로 친구 만들기에 소홀하다. 무한경쟁과 속도 지상주의는 이해관계가 없는 친구와의 만남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낸다. 유·무형의 이익을 주고받는 ‘갑’과 ‘을’의 비즈니스 미팅이 우리 만남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의 사회적 지위가 중심이 되는 만남에선 진정한 우정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우정’은 친구(友)와 정(情)을 나누는 것이다. 정을 나누다 보면 솔직해지고, 서로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나를 솔직해지게 만들고, 내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 친구란 얘기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한 달에 몇 번 우정을 나누는가.

 친구 만들기의 시작은 좋은 친구의 선택이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거들먹거리지 않고 소탈한 사람이 좋다. “네가 그렇게 잘 나가냐? 나도 내 분야에선 최고야”라는 식의 만남은 그때는 폼 날지 몰라도 인생의 경사가 내리막으로 돌아서는 순간 우정의 기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다. 너무 한쪽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관계도 좋지 않다.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아픔을 위로할 때 우정은 숙성된 향기를 내게 된다. 그러려면 일단 체면의 옷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우정’을 경험하길 권한다. 우정도 만들어가는 것이다. 갑자기 원한다고 마술처럼 등장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3차원 우정’을 쌓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의 또래뿐 아니라 나이 어린 사람과도 우정을 나누란 얘기다. 쉰 살에 서른 살 친구가 어리게만 느껴지는가? 20년 뒤를 생각해보라. 일흔 살에 쉰 살 친구는 어떤가? 노후 포트폴리오에 우정이란 자산을 심어 넣는 것을 잊지 말자.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스트레스로 인한 고민을 e-메일(dhyoon@snuh.org)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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