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Focus] 사회통합위원장 송석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3면

빈부 간, 세대 간, 이념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계적 현상이다. 고용 없는 성장’ ‘빈부의 대물림’에 민심은 성나 있다. 이런 민심에 편승한 ‘포퓰리즘 정책’이 판을 친다. 그런 정책들은 사회 갈등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런 갈등을 극복하지 않고 한국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을까. 송석구(71)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동양철학자다. 동국대 교수, 동국대 총장, 동덕여대 총장을 지냈다. 현재 가천의대 총장을 맡고 있다. 송 위원장은 2009년 출범 당시부터 사회통합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지난 1월 위원장이 됐다. 얼핏 보기에도 송 위원장은 ‘호랑이상’이다. 알고 보니 해병대 출신으로 베트남전에도 다녀왔다. 그런 그이지만 “나를 주장해본 적이 없다” 했다. 그게 그가 믿는 ‘통합’의 비결이었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사회통합위원회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사회 통합을 강조한 것을 계기로 출범했습니다. 빈부 격차에 따른 계층 갈등,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간 갈등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 갈등입니다. 이런 갈등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허들’입니다. 그래서 사회통합위원회가 발족한 것이죠.”

●사회 통합이라는 게 대단히 어려운 과제인데요.

 “하루아침에 이룩될 수 없는 과제죠. 하지만 ‘사회 통합이 중요하다’라는 국민 인식이 높아지면 많은 부분이 개선될 수 있지 않느냐,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사회 통합을 위해 ‘사회통합위원회’가 굳이 있어야 할까요.

 “정부 정책이라는 게 원래 사회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취지에서 나오는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어요. 사회통합위원회는 이런 사각지대를 발견해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정책을 개발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합니다. 제가 위원장을 맡은 이후론 여기에다 ‘통합 교육’을 추가했어요. 사회 통합을 위해선 국민 교육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 수준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갈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예요. 터키·폴란드·슬로바키아 다음으로 높죠. 갈등에 따른 사회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7%에 이를 정도로 큽니다. 굉장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에게 심리적 안정성이 결여돼 있어요. 상대적 박탈감이 큽니다. 달리 얘기하면 ‘중산층의 몰락’이지요. ‘나도 중산층이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는 더 이상 중산층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허무의식·절망감·박탈감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이 대단히 희박하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우리 사회가 ‘노동의 유연성’을 맞닥뜨린 것이죠.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는데 재취업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사회안전망도 아직 두텁지 않고요. 그러면서도 대기업 임원들은 상상을 초월한 월급을 받고 있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우리 사회의 불균형, 부조화, 미래에 대한 불안, 이런 것들이 나는 제일 심각하다고 봐요.”

●사회 통합을 위해선 위원회의 대표성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종교인, 경제학자, 시민사회운동가, 교수, 소설가 등 각계 인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념적으로 진보·보수·중립적인 분들이 두루 들어와 있어요.”

●이념적으로 위원장님은 어느 쪽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십니까.

 “중립보수라 할까요. 중립에서 약간 보수 쪽에 가 있다고 할 수 있죠.”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중립이란 어떤 것입니까.

 “유교의 관용과 중용, 불교의 화쟁과 자비가 사회통합위원회의 지향점과 같습니다. 같은 것과 다른 것, 즉 동이(同異)의 중립이 뭔 줄 아세요. 바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이에요. 조화로우면서도 다름을 유지하는 것이죠. 생멸(生滅)의 중도는 뭐냐, ‘멸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멸이 있다’는 것이에요.”

●‘동(同) 아니면 이(異)’ ‘생(生) 아니면 멸(滅)’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자는 말씀이군요.

 “지금 우리 사회도 바로 그런 이분법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미래를 크게 봐서 지혜롭게 생각을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 다들 불안해해요. 왜들 자꾸 불안해하나 몰라요. 뒤에서 나를 붙잡으러 오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에요. 제가 광화문 네거리를 지날 때마다 유심히 봅니다. 횡단보도를 지날 때 천천히 가다가 앞의 사람이 뛰기 시작하면 다 같이 뜁니다.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것이죠.”

●통합에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데요.

 “지금 같은 2만 달러 시대가 제일 위험합니다. 3만 달러 시대가 되면 국민 스스로 갈등을 극복할 수가 있는 토대가 갖춰지죠. 하지만 2만 달러 시대에는 국민의식 수준, 그리고 국가의 복지제도가 반반씩 역할을 합니다. ‘복지정책을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하느냐’ 이런 것에 대해 정책이 예측 가능해야 해요. 그래야 정책이 신뢰를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반값 등록금’을 예로 들어봅시다. ‘어떤 수준의 등록금이 적절하냐’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먼저 이루어야 해요. 그런데 선거가 다가오니까 너나없이 등록금 정책을 마구 내놓는 거예요. 아침에 이랬다가 저녁에 저랬다 하면 그건 예측이 불가한 것이죠. 그렇다고 국민들도 너무 말에 집착해선 안 됩니다.”

●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어떤 뜻이죠.

 “‘말 그대로 들으면 용서할 바가 없지만(如言而取皆不許), 뜻을 이해하면 모두 용서할 수 있다(得意而言無不許)’라는 말이 있어요. 말 자체에 집착할 게 아니라 말의 뜻을 이해해야 해요. 아버지가 아들을 타이르면서 ‘그렇게 살려면 나가 죽어라, 인마’ 할 수 있죠. 그게 ‘진짜 죽으라’는 얘깁니까. 아니죠.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얘기잖아요. 지금 ‘반값 등록금’이라는 말들을 쓰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등록금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겠어요. ‘등록금이 너무 비싸니 낮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서로 간에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질 않는단 말이에요. 그게 진짜 반값인 줄 알고 말 그대로 듣는 거예요. 그럼 갈등밖에 더 남습니까. 증오밖에 더 남겠느냐 이 말입니다.”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 민간위원장도 지내셨죠. 세종시 문제만큼 한국 사회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킨 사안도 없었는데요.

 “제가 고향이 대전이다 보니 맡게 됐어요. 세종시 문제도 화쟁적인 대화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였어요. 그런데 정치적인 고리가 너무 많이 걸려 있었어요. 불교에서 말하는 ‘화쟁’을 보면 ‘쟁(諍)’은 싸울 ‘쟁(爭)’이 아니라 말씀 ‘언(言)’변의 ‘쟁(諍)’이에요. ‘다툼을 하되 대화를 통해 토론하는 것’이죠. 그런데 박근혜라는 큰 기둥,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현실적인 힘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거예요. 얼마든지 중도적인 입장이 나올 수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동국대·동덕여대에 이어 가천의대 총장을 맡고 계시죠. 총장으로서 장수하시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자화자찬할 순 없고, 운이 좋았다 할까요. 굳이 비결을 말하자면, 나 자신이 갈등의 중심에서 서질 않아요. 나는 갈등을 관조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야 갈등을 극복하는 주체가 될 수 있어요. 대학 사회에도 갈등이 정말 많습니다. 교수마다 다 스스로 ‘재판관’ ‘이론가’를 자처하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화해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도 난 화해를 시켰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나’를 주장하지 않으니까요. 나 스스로 정해 놓은 방향이 없어요. ‘나’와 ‘너’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나는 중도라고 보고 있거든요. 정치도 그렇잖아요. 조금씩 손해 보면 되는 것이거든요. 절대 정복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총장이 자기 권위로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타협이 안 되죠. 상호 존중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그러기 위한 총장님만의 비법이 있습니까?

 “저는 매일 사경(寫經)을 합니다. 불교 경전을 베껴 쓴다, 이 말입니다. 제 좌우명이 ‘심청정 국토청정(心淸淨 國土淸淨)’이에요. ‘내 마음이 깨끗해야 세상이 깨끗해진다’는 뜻이죠. 내 마음을 맑게 하려고 사경을 합니다. 사경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그래서 제가 서재에 들어가 있으면 아내가 제일 싫어합니다. ‘밥도 안 먹고 사경만 한다’. 하하하.”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건강이죠. 제가 건강해야 생각도 잘 돌아가고, 내가 목표로 하는 공부도 할 수 있고, 가족들도 평안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전에는 북악산을 한걸음에 올랐는데, 얼마 전에 해보니까 제법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과로하지 말자’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합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마음의 집착을 버려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성취욕 때문에 건강을 잃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세대는 ‘성취’ ‘성취’ 하며 살아온 세대 아닌가요. 가능한 한 참선을 많이 하고 많이 걸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