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몸을 던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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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맥문동 Liriope platyphylla

몸을 던지다 - 김형술(1956~ )

꽃의 근원은 지상이 아니다

(……)

꽃의 자리는 허공이 마땅하다

바람의 때를 기다려

제 스스로 바람이 되어

가볍게 꽃대궁을 떠나

허공에 몸을 던져 이룩하는

완벽한 자유

목숨의 완벽한 완성

꽃을 바라보는 일

지상의 모든 꽃을 사랑하는 일은

그 찰나의 떨림을 보는 일

온 가슴으로 그 떨림을 안는 일

(……)

\아파트 단지의 화단에서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웠다. 한 사내가 봄부터 기울인 정성이 피어난 것이다. 사내는 햇살 들면 거름을 치고, 비 오면 물길을 냈다. 바람 불면 사내도 바람 되어 함께 흔들렸다. 허공에서 이룬 맥문동의 개화를 사내가 경비실 창문으로 그윽하게 바라본다. 꽃이 지어낸 찰나의 떨림 따라 사내의 눈망울도 흐뭇이 떨린다. 한 해 살림을 다 이뤘다는 안도다. 지상의 모든 꽃을 사랑하는 일이고, 온 가슴으로 그 찰나의 환희를 끌어안는 일이다. 아파트 단지가 보랏빛으로 타오른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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