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기반 무너져가는 쌀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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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일주
농협경주환경농업교육원 교수

“지금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의 밥을 먹으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지난 7월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세계 최강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의 귀국 인사말 중 한마디다. 여기에 바로 우리 한국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힘의 원천이 압축돼 있다. 박 선수의 주변 사람들은 박 선수가 힘든 해외 전지훈련 속에서도 쾌거의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훈련기간 중 꾸준히 섭취한 ‘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인의 보약 쌀밥의 우수성에 대해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고, 익히 잘 알고 있다.

 올여름 사상 유례없는 집중호우와 일조시간 부족으로 과일·채소 등 농산물 작황이 극히 불량한 가운데 쌀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98년 99.2㎏에서 2009년 74㎏으로 급감했다. 올해 쌀 생산량은 최근 10년 이래 가장 적은 418만t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그러자 농업계는 쌀을 수출하다 농업 기반 투자 소홀로 쌀 수입국으로 전락한 필리핀의 사례를 연상하며 우려하고 있다. 필리핀은 80년대까지 쌀을 자급하며 수출도 했지만 지금은 1년에 250만t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쌀산업의 기반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필리핀 사태를 피하려면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수확량과 품질 제고를 위해 벼농사 후기의 작황 관리를 잘해야 한다. 품종 선택, 이앙 시기, 시비 관리 등 생육 초기 재배 관리도 중요하지만 지금부터의 수확기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8월 하순부터 9월까지의 일조시간이 쌀 수량의 74%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폭우·태풍 등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필요하다. 지난해의 경우 가을장마가 이어지면서 전국의 쌀 생산량은 429만t에 그쳐 80년의 355만t 이후 30년 만에 최악의 흉작을 기록했다.

올해 작황을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나 앞으로 맑고 적당한 날씨가 이어진다면 평년 이상의 쌀 수확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무엇보다 흉작과 평년작 이상 두 가지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별 수확기 쌀 수급 안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일주 농협경주환경농업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