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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95) 잘못된 묘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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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영화배우 신성일은 올해 나이 74세다. 칠순 고령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촬영으로 한창 바쁘던 1967년 그는 요도결석증에 걸려 고생했다. 잘못된 의학상식도 한 몫했다. [중앙포토]

‘어설프게 아느니, 아예 모르는 게 낫다’는 옛말은 틀린 게 없다. 1967년 여름 무렵, 하루는 이태원 181번지 우리집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피가 보였다. 양변기가 붉게 물들었다.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랐다. 특별히 잘못한 게 없었지만 아내가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옆구리에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톱으로 허리를 자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67년은 내 영화 인생에서 전성기였다. ‘비서실’ ‘돌무지’ ‘하얀 까마귀’ ‘까치소리’ ‘원점’ ‘역마’ ‘일월’ ‘동심초’ ‘청춘극장’ ‘새벽길’ ‘내일은 웃자’ ‘밀월’ 등 쟁쟁한 작품이 배출됐다. 하루 서너 군데 촬영장을 돌아야 하는 스케줄 속에서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서둘러 가회동에 있는 이재문 내과로 출발했다. 영화계 입문 당시 하숙할 때부터 다닌 곳이다. 하얏트호텔에서 남산관광도로로 내려오는 데 남대문 오른쪽 신호등에서 걸려 멈추었다. 너무 아파서 운전사의 뒤통수를 때렸다.

 “빨리 가자, 임마!”

 남편을 꼬집고 때리는 출산 직전의 산모와 비슷하다고 할까. 나중에 보았더니, 어찌나 세게 쳤던지 운전사의 뒤통수에 혹이 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한 일이다. 상황을 듣던 주치의 이재문 선생은 연건동 서울대병원 비뇨기과로 전화했다. 엑스레이 판독 결과, ‘요도결석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요도에 돌이 박혀 있다는 것이었다. 칼슘 덩어리가 뾰족뾰족한 돌 형태로 요도 내벽을 긁으니 피가 나올 수밖에.

 여름에는 촬영장에서 쏟아지는 땀과 싸워야 했다. 모든 분장을 직접 해야 했던 때였다. 나는 메이크업이 부끄러워 촬영장 한 구석, 혹은 차 안에서 분장을 마무리했다. 땀을 흘리면 얼굴이 번들거리게 돼 촬영에 지장이 많았다. 내 나름의 묘책은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미8군에서 나온 고농축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매일 아침 아내 엄앵란이 정성껏 끓어준 곰탕도 요도결석증의 또 다른 원인이 됐다. 뽀얗게 우려낸 곰탕은 석회질 덩어리로 요도결석에 걸리기 쉽도록 한다. 오렌지주스와 곰탕 등은 인·철분·칼슘이 특히 많은 음식이다. 지금 돌아보면 어리석은 묘책이었다.

 병원에선 맥주를 마셔보라고 했다. 그런데 술을 못하는 내가 아니던가. 입원 기간 동안 맥주를 마시다 취해서 잠들기를 반복했다. 사흘째 되던 날, 소변에서 칼슘 덩어리가 빠져 나왔다. 이후 물을 많이 마시고, 맥주도 가끔 한 잔씩 하게 됐다.

 2002년 국회의원 생활 중에는 전립선 비대증으로 고생했으며, 비대 제거 수술을 받았다. 전립선 비대증은 요도결석증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성 생활을 장기간 안 하는 것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95년부터 10월부터 대구 내려가 선거운동하고 200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지나치게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상대방 진영에 어떤 꼬투리도 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내가 전립선암 투병 중이란 엉터리 기사를 게재했다. 전립선 비대증 정기검사를 받은 것이 전립선암으로 둔갑한 것 같다. 전립선암에 대한 질문에 일일이 답하기 귀찮아, 요즘은 그 언론사가 낸 정정 기사를 복사해 가슴에 지니고 다닌다. 나, 신성일은 건강한 청춘이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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