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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티켓 효용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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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여름휴가를 이용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두 딸네 집을 다녀왔다. 날씨가 어찌나 서늘하던지 두꺼운 옷만 입다가 돌아왔다. 나름 피서인 셈이다. 식구들이 퇴근하기 전인 낮 시간에는 딱히 할 일도 없던 우리 부부. 지도 한 장 들고서 차를 타고 다니며 이곳 저곳 맛집을 찾아 다녔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딱딱한 콩이 따끈한 두부로 만들어지는 요즘 세상에, 곱게 저어주고 얇게 밀어주는 전자동 반죽용 기계를 마다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반죽하고 밀어서 만든다는 와플 아이스크림 집. 30분을 기다린 끝에 딸기맛 와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차로 돌아와 보니 차문에 하얀 종이가 꽂혀 있었다. 95달러짜리 벌금 티켓이다. 땅콩같이 생긴 작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거리에 주차를 했는데 집집마다 하나씩 붙어 있는 차고의 출입구를 내 차가 방해해서 그렇단다. 차가 출입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간 선을 살짝 밟았더니 그것을 주인이 고자질했나 보다. 결국 4달러짜리 아이스크림을 100달러를 내고 먹은 꼴이다.

 다음 날 아침, 유명한 잡지에 소개된 집이라는 ‘핸드메이드 피자’집을 찾았다. 한 판씩을 먹고는 배를 두드리며 흐뭇한 얼굴로 주차한 곳으로 갔는데, 앗! 차문에 붙어 있는 또 다른 95달러짜리 티켓. 언덕배기 높은 곳에 정확하고 완벽하게, 그 어떤 선도 밟지 않고 주차를 하긴 했지만, 언덕에 주차할 때마다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바퀴를 45도 이상 비틀어 놓고 나와야 하는 걸 깜빡했다. 잘못은 인정해도 맘은 씁쓸했다.

 다음날 아침. 벌금이 무서워 망설이다가 심호흡을 하고는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저만치 세워놓은 차에 붙어 있는 낯익은 하얀 종이. 또 티켓이다. 오늘은 차를 길거리에 세우지 못하는, 길거리 청소 날이란다. 50달러짜리다. 다음날부터 귀국 전까지 난 그만 주차 강박증에 걸려버렸다. 주차된 바퀴의 각도가 45도가 넘는지, 그 어떤 선도 넘지 않았는지, 길거리 청소 날은 언제인지. 그렇게 조심 또 조심했건만 티켓을 두 번 더 받아 총 385달러의 벌금을 내고는 참담한 마음으로 귀국했다. 하루라도 늦게 내면 벌금에다 또 벌금이란다. 오며 가며 가깝게 지내던 옆집 여자로부터 강아지 변을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했다는 딸의 친구. 그 사건 이후 정나미가 떨어져 이사를 가버렸다는 그 애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살할까 봐 겁이 나서 2억원을’ 손에 선뜻 쥐어주는 정이 철철 넘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이유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철저하게 적용되는, 인정머리 없는 그 나라의 ‘무관용의 원칙(zero-tolerance principle)’이 내심 야속했다. ‘급해서’ ‘바빠서’ ‘술김에’ ‘불쌍해서’ 하면 너그럽게 잘도 품어주는, 관용이 미덕이고 정도 많은 우리나라. 그 덕에 길은 불법 주차로 엉망이고 발 밑은 굴러다니는 개X 천지인가 보다.

 귀국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핸들 위에 놓인 손. 나 같은 사람 길들이기엔 관용보다는 벌금 티켓이 더 효과적인가 보다. 법 잘 지키는 착한 사람 만들기. 참~ 쉽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