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국가 무상 제공 ‘공짜’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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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무상급식 지원 범위에 관한 서울시 주민투표’는 개함에 필요한 투표율 미달로 뚜껑도 열지 못하고 무산되었지만 과잉 복지를 경계하고 합리적인 복지정책을 바라는 서울시민의 뜻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투표함 개함에 필요한 33.3%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투표 참여를 조직적으로 막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215만여 명의 서울 시민이 소중한 자신들의 주권을 행사한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가 특정 정당과 인물을 지지하고 선택하는 공직 선출을 위한 선거가 아니라 복지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 정책선택을 위한 선거였다는 점에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복지정책을 선택하기 위해 투표장에 나갔다고 볼 수 있다. 투표장에 나간 대다수의 유권자는 이번 선거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의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기 위해, 혹은 그가 속한 한나라당을 지지하기 위해 나간 것이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이 능력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복지정책으로 인해 지난날의 중남미 국가처럼 후진 국가로 전락하거나 후대에 빚을 물러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투표장에 나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부정하는 투표 참가 거부운동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 다수 유권자의 뜻이 반영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개표가 무산되었기 때문에 서울시민들은 전면적 무상급식도, 단계적 무상급식도 모두 선택하지 않은 셈이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무상급식이 계속 확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민투표가 끝난 시점에서 이제 남은 것은 무상급식 외에 우리 국민들이 선택해야 할 앞으로의 복지정책 방향이다. 세금 증액이 없는 비합리적인 복지정책의 결과와 폐해는 과거의 남미 국가들뿐 아니라 최근 유럽 복지국가들의 실패를 통해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가가 무상으로 주는 것은 그냥 ‘공짜’가 아니라 우리의 호주머니에서 나간다는 단순한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