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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육상선수권과 대구의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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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홍권삼
사회부문 차장

대구가 육상 열기로 뜨겁다. 지난달 27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 후 시민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자원봉사자와 시민 서포터스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마라톤 코스에는 응원하는 시민이 넘쳐난다. ‘육상 도시’라 할 만하다. 이번 대회에는 202개국에서 1945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대회의 생산유발 효과가 5조5876억원,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는 1조7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대회 기간 연인원 65억 명이 경기를 시청한다. 대회 준비에는 9800억원이 들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의 2조원,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8조원보다 적다. 스타디움 등 기존 시설을 개·보수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회가 끝난 뒤다. 대구시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는 국제 스포츠계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대구와 한국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대구는 대회 유치과정에서 ‘공약’을 내놓았다. 대구를 아시아의 육상 허브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여기에 큰 점수를 주었다. 공약 실천을 위해 대구육상진흥센터를 짓기로 했다. IAAF에 대회 개막 전까지 완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구스타디움 서쪽에 건립 중인 육상진흥센터는 ‘육상 사관학교’다. 639억원을 들여 5000석의 실내육상경기장과 숙소를 짓고 육상 꿈나무와 지도자를 육성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 기초공사를 끝낸 상태다. 대구시가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시간을 끈 데다 현장에서 문화재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시는 IAAF에 지금껏 완공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육상진흥센터를 내실 있게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또 있다. 시는 스타디움 서쪽 지하에 민간 자본으로 쇼핑몰을 만든 뒤 이 공간을 대회 기간 중 국제방송센터(IBC)로 쓰기로 했다. 투자비를 줄이려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업체 간 공사대금 지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세 차례나 공사가 중단됐다. 결국 지난 5월 끝낼 예정이었던 IBC 공사는 개막 전날까지 계속됐다. 각국 방송사 중계팀은 공사장을 드나들며 방송 준비를 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국제육상경기대회도 고민거리다. 이 대회는 세계육상선수권을 유치하기 위해 2005년 대구시가 만들었다. IAAF가 공인한 행사다. 우사인 볼트·타이슨 게이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한 한국 육상의 간판 경기다. 육상 진흥을 위해서는 대회를 잘 키워야 한다. 그런데 비관적인 전망이 적지 않다. 대구시의 한 간부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끝나면 육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 예산 확보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또 하나. 대구 시민과의 약속이다. 대회 유치의 중요한 목적이 경제 살리기였다. 그런 만큼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등 성과를 내야 한다. 2002년 겨울올림픽을 치른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는 적극적인 홍보 덕에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대구경북연구원 김용현(도시경제학) 박사는 “대회가 일회성 행사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구가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가는 대구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홍권삼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