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오세훈의 최후, 장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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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3년5개월 전 한나라당은 자신의 몸에 비해 정말로 큰 권력의 외투를 입었다. 노무현 정치에 대한 식상함 때문에 유권자들이 분에 넘치게 큰 옷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내 그 큰 외투에 허우적거렸을 뿐이다. 차라리 그보다 훨씬 작은 맞춤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외투가 너무 커 허우적대다 보니 비전은 물론 대의(大義)는 더더욱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풍족한 권력의 외투 속에서 티격태격하며 신선놀음만 하다 보니 한나라당에는 피를 흘리는 전사의 모습도, 땀을 흘리는 농부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몸을 사리는 부자의 모습뿐이었다. 물론 지금은 ‘억대 거지’처럼 되었지만 말이다. 공동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열정도,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하겠다는 진정성도 없이 어영부영 세월만 보낸 정당이 아니던가.

 오세훈 시장이 무대 위에서 퇴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보수의 가치를 위해 피를 흘리는 정치인이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백 장군처럼 처절하게 싸웠고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처럼 비장하게 싸우다 끝내 스러져갔다. 실로 이게 얼마 만인가. 비록 패배하고 떠나갔지만 백배의 소출을 내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밀알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참에 한나라당에 묻고 싶은 게 있다. 보수의 대의를 위해 죽고자 한 정치인들이 과연 있는가. 실로 한나라당에 소크라테스와 같은 존재가 열 명이라도 있는가. 아테네 젊은이들을 계몽하고자 했으나 독배와 마주하게 된 소크라테스, 그는 탈옥을 권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이라도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거절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떠나갔으나 두고두고 대의와 원칙을 위해 몸 바친 사람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금 많은 사람이 보수의 아이콘에 목말라하고 있다.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인은 많지만 그저 출세와 자리에 연연하는 ‘정치꾼’일 뿐 보수의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는 촛불과 같은 존재는 없다. 좌파진보를 보라. 그들은 아이콘을 만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노무현은 이미 그들의 아이콘이 되었고 지금은 또 한진중공업의 한 여성 노동자를 위해 서울까지 ‘희망버스’가 질주해 왔다. 노동자에게서 아이콘을 찾는 데 익숙한 것이 좌파진보라면, 지도자로부터 아이콘을 만드는 것이 우파보수의 특징일 터다. 하지만 몸 사리고 표 계산에만 열중하는 정치꾼들이 어떻게 보수 아이콘을 만들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 정치인들 가운데 당장 보수 아이콘을 만들 능력이 없다면 하다못해 자기 집무실에 영감을 주는 사진이라도 한 장 걸어두고 수시로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국방부 장관 집무실에는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한다. 천안함과 연평도의 비극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비장함의 표시일 터다. 그렇다면 지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사무실에는 무슨 사진이 걸려 있는가. 대처의 사진인가 레이건의 사진인가, 아니면 박정희의 사진인가 이승만의 사진인가. 그게 아니라면 복지 포퓰리즘의 상징적 인물인 아르헨티나 페론의 사진인가. 그런 게 없다면 오세훈의 사진이라도 걸라. 보수의 대의를 위해 선뜻 정치생명을 버린 결연함이 멋지지 않은가.

 한나라당은 집권여당이면서도 공감이 없는 메마른 정치, 원칙이 없는 즉흥적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눈물 흘리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고, 능력 있는 사람의 역량을 키워주지도 못했다. 그저 숨쉬기만 하며 그럭저럭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숨쉬기 운동이란 누구나 하는 것이어서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가치정당으로 결연하게 행동했더라면 울림이 있었을 터인데, 풍향계 없이 보신만 일삼는 통에 강풍이건 미풍이건 상관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정당이 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한나라당 정치인들이여! 그래서는 백전백패다. 그대들에게 대의를 위한 결연한 의지가 있는가, 특출 난 지혜를 모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여기서 그냥 포기하라. 어차피 지금 분위기는 좋지 않다. 죽기를 각오하고 결연하게 나설 것인지, 아니면 표 계산만 하다가 죽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