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 겉으론 아픈 만큼 성장 … 속에선 갈등 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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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31일 출범 1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신한금융지주는 차분했다. 본점 로비에 전시한 관련 사진들이 없었다면 10주년인지 모를 정도였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매년 해오던 수준으로 창립기념식을 여는 것 외엔 다른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좋은 날을 드러내놓고 자축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한지주 출범일이 ‘신한 내분사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날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1일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은 창립 9주년 기념식에서 ‘신한웨이’를 역설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신한은행은 신 사장을 횡령과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각종 의혹 폭로와 금융감독원 검사, 검찰 수사, ‘빅3’(라응찬 당시 회장·신 사장·이백순 행장) 퇴진 등 일련의 사태가 정신없이 몰아쳤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지배구조를 자랑해 온 신한의 자부심은 곤두박질쳤다.

 1년이 지난 지금 신한지주는 외형상으론 충격을 떨쳐냈다. 국내 증권사들이 예상하는 신한금융지주의 올해 당기순이익은 3조4000억원. 국내 금융사 사상 처음으로 순익 3조 클럽 가입을 예고하고 있다. 상반기에만 당기순이익 1조9743억원을 올렸다. 주가도 KB금융을 추월했다. 키움증권 서영수 연구원은 “내분사태로 경영진이 물갈이되면서 특유의 조직문화에 금이 갔지만 여전히 차별화한 수익성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내부적으로는 한동우 회장의 조직 추스르기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발표한 지배구조 개선안이 대표적이다. 그룹경영회의 구성원 11명 중에서 차기 회장을 뽑기로 해 승계구도의 투명성을 높였다. 한 회장이 여러 차례 강조한 대로 “한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김국환 신한은행 노조위원장은 “한 회장과 서진원 행장 모두 조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중심을 잘 잡고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신한사태의 여진이 간간이 조직을 흔들고 있다. 인사를 둘러싼 은행과 신 전 사장 측 갈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서 행장이 신 전 사장과 가까운 박중헌 전 SBJ은행 부사장(본부장)을 불러 “9월에 본부장 임기가 끝나면 은행에서 나가라”고 말한 게 외부에 알려지기도 했다. 서 행장이 이틀 만에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조직 내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신 전 사장 측 인사는 “편파 인사가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직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갈등이 내년 초 다시 터져나올 거란 우려도 적지 않다. 내년 3월이면 서 행장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서 행장은 지난해 12월 이백순 전 행장의 잔여 임기 1년3개월을 이어받았다. 안정을 되찾아 가던 은행 조직이 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또다시 술렁일 수 있다. 이전 인사 때 논란이 일었듯이 라응찬 전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거란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신한지주가 계열사 간 비슷한 업무를 묶는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하는 걸 두고도 “특정인을 밀어주기 위한 것”이란 뒷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취임한 지 5개월 남짓 된 한동우 회장이 자기 색깔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내부 관리에 치중하다 보니 대외활동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다. 익명을 원한 신한은행의 한 임원은 “한 회장이 아직까지는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은 충성심 강한 조직문화 덕분에 실적이 좋지만 신한사태 여파가 2~3년 더 이어지면 조직이 흔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애란 기자

◆매트릭스 조직=법인 단위의 조직체계와 별도로 계열사 간 공통된 사업부문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조직. 계열사 간 시너지효과를 내고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금융회사 중엔 하나금융지주가 2008년 가장 먼저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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