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털고 다시 뛰는 볼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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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100m 결승에서 부정출발로 실격된 우사인 볼트(왼쪽)가 29일 선수촌 옆 박주영 축구장 트랙에서 400m 계주 훈련을 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괴물이 여유를 되찾았다.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가 남자 100m 결승 실격의 충격을 훌훌 털고 훈련에 열중했다. 춤과 노래를 즐기는 자메이카 출신답게 변함없이 밝고 유쾌했다.

 볼트는 29일 오후 4시쯤 대구시 동구 율하동 선수촌 안에 있는 보조경기장에 나타났다. 볼트가 빠진 사이 남자 100m 세계챔피언에 오른 요한 블레이크, 글렌 밀스 코치 등 대표팀 선수와 코치도 함께 왔다. 사타구니 부상으로 100m를 포기한 볼트의 라이벌 아사파 파월도 모습을 드러냈다.

 검정 반바지와 회색 민소매를 입은 볼트는 가볍게 달리며 몸을 풀었다. 10분을 쉬고서는 블레이크와 짝을 이뤄 바통 터치 훈련을 했다. 블레이크는 자메이카 400m 계주 대표팀의 2번 주자, 볼트는 3번 주자다. 전담 코치가 달라 4번 주자인 파월에게 바통을 건네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볼트는 바통 연결과 달리기에 비지땀을 쏟았다.

 볼트는 훈련 도중 블레이크와 농담을 주고받고 웃음을 터뜨리는 등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속도를 끌어올려 바통을 건네려는 동료가 쫓아오지 못하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뛰어보지도 못하고 100m 금메달 꿈을 접어야 했던 충격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볼트는 100m 경기를 앞두고 무척 예민했다. 첫 훈련부터 관심이 집중되자 “집중할 수 없으니 취재진을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자신의 실수로 경기를 그르쳐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것 같았지만 한 학생이 영어로 “사랑해요, 볼트”라고 하자 “고맙다”고 웃으며 답할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1시간가량의 훈련을 마친 볼트는 노란색 유니폼을 얼굴에 두르고 취재진을 향해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여전히 다른 사람 웃기는 걸 즐겼다.

 볼트는 100m에서 실격 당한 뒤 “내가 눈물 흘리기를 바랐는가. 그럴 일은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볼트는 평소처럼 당당했다. 장난기가 넘쳤다.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겉모습은 유쾌한 세계 단거리 최강자 볼트였다.

 충격에서 벗어난 볼트는 이제 200m에 집중한다. 200m 예선은 9월 2일 열린다. 결승전은 3일 오후 9시20분에 시작된다.

 200m는 볼트의 주종목이다. 스타트는 느리지만 폭발적인 가속도가 장점인 볼트의 몸은 100m보다 200m에 더 최적화돼 있다. 볼트는 2002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세계주니어 챔피언십 200m에서 20초61로 우승했는데 이것이 육상선수 볼트의 첫 금메달이었다.

 볼트는 200m 세계챔피언이다. 사실 100m보다 200m에서 더 독보적인 존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19초30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그는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는 19초19로 자신의 기록을 0.11초 단축하며 우승했다. 현재 200m에서 볼트의 적수는 없다. 부정 출발만이 유일한 볼트의 걱정이다.

대구=김종력·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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