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소장품 근대 미술 72점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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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니라 정부다.

1997년 조달청조사에 따르면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가지고 있는 미술품은 3만여점. 올해 들어 소장품 4천점을 돌파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약 8배에 이른다.

그 가운데 '알짜배기 컬렉터' 로 소문난 한국은행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소장품을 일반에 공개한다.

2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오광수)덕수궁 분관에서 열리는 '한국 근대미술의 한 단면-한국은행 소장품을 중심으로' 전이다.

지난 50년간 한국은행이 수집한 미술품은 1천8백여점. 이중 72점을 선보인다.

작가만도 김은호.노수현.민경갑.박노수.박승무.변관식.송영방.이상범.장우성.조석진.허건.허백련'(한국화).권옥연.김원.김인승.도상봉.문학진.박상옥.박항섭.변종하.심형구.오승우.윤중식.임직순.최덕휴.황염수(서양화) 등 52명에 이른다.

최은주 분관장은 "한국은행 컬렉션은 그간 많은 미술사 연구자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왔다" 고 말한다.

서양화 부문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김인승의 '봄의 가락' (42년). 제21회 조선미술전람회(鮮展)추천작가로서 출품한 것이다.

첼로 연주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의자에 걸린 코트.보면대. 바닥에 놓인 악보.슬리퍼 등 소품을 적절히 활용하고 등장인물의 시선을 모두 악보로 향하게 해 주의깊은 음악 감상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는 수작이다.

심형구(1908~62)의 '수변(水邊)' (38년)은 제17회 선전 특선작. 그는 도쿄미술학교 졸업과 동시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물동이를 든 댕기머리 처녀의 모습을 통해 조선의 향토색 짙은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50~60년대 서울 풍경을 주로 그렸던 박상옥(1915~68)의 '한국은행' 은 지금은 자취를 감춘 소공동 주변의 옛 풍경을 보여준다.

청전(靑田)이상범의 '야산귀로' (50년대), 의재(毅齋)허백련의 '어형초제' Ⅰ.Ⅱ(58년), 소정(小亭)변관식의 '비폭 앞의 암자' (50년대), 이당(以堂)김은호의 '풍악추명' (58년)등은 한국화에서 손꼽히는 작품들.

작품감상과 함께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미술품을 공공기관이 어떻게 관리해왔는지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소장품이 공개된 것은 지난 9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아름다운 성찬' 전이 유일하다.

6월 20일까지. 02-779-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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