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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저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3호 02면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 일찍 들어간 지난 목요일, TV를 켜고 누워 있다가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앉았습니다. SBS TV의 ‘순간포착-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은 경기도 화성에 사는 올해 57세의 주부 강신애씨. 그는 중풍으로 전신마비에 걸린 남편을 무려 30년8개월째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집은 폐가가 된 지 오래. 매일 중환자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말도 못하는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헌신하게 했을까요. 고교시절 처음 만난 남편과 연애 끝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다고 하더군요. 좋았던 시절도 잠시, 그녀가 먼저 심장과 자궁 수술을 받았고 이어 경찰 공무원이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그녀는 “신혼 초기 남편과의 3년을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팠던 자기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모른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래서 꽃다운 신부는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오로지 병실만을 지켰습니다. 덕분에 남편분의 얼굴은 환자라고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좋아보이더군요. “(남편이 하도 젊어 보여서) 남들이 내 아들이라고 한다”고 자랑하는 강씨의 표정 역시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강씨 남편이 강씨에게 해준 3년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부부가 나이 들면 젊었을 때 해놓은 ‘각종 저축’으로 산다는데, 저는 얼마나 모아놓았는지 새삼 생각해봤습니다. 슬쩍 아내 얼굴을 보니 이렇게 쓰여있더군요.
“저축은 무슨 저축, 마이너스 통장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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