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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차비 5만4700원 … 기차 타고 나라 한바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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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홍지연 기자(오른쪽)가 코레일 내일로 티켓으로 일주일 동안 전국 여행을 떠났다. 출발 전 한껏 들뜬 표정으로 포즈를 취한 홍 기자와 그녀의 동행 승연양.

스물다섯 살 초년생 기자에게 일주일의 자유여행 기회가 주어졌다. 코레일 내일로 티켓을 사서 기차를 타고 일주일 동안 전국 방방곡곡 원하는 대로 여행을 떠나보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처음엔 웬 떡인가 싶었다. 인생 최대의 암흑기라는 ‘취(업)준(비)생’ 시절을 마치고 고대하던 취업에 성공해 이제야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 내팽개쳐져 말 그대로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바로 이때 생각지도 못한 탈출구가 나타난 것이다.

 내 나이 스물다섯. 내일로 티켓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해다. 내일로 티켓은 만 25세 이하면 일주일 동안 기차를 무한대로 타고 다닐 수 있는 일종의 프리패스다. 그 티켓 하나 들고 전국 일주를 떠날 수 있게 됐다.

 앞뒤 잴 것 없이 전국 지도부터 꺼내들었다. 동에서 서로, 위에서 아래로 지도를 훑어보며 가보고 싶은 데를 골랐다. 전국 팔도에 이렇게 많은 기차역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 생소한 이름도 있었고, 한동안 추억에 잠기게 하는 기차역도 있었다.

 고민 끝에 전남 순천과 부산, 경북 경주와 안동, 그리고 강원도 강릉의 정동진을 골랐다. 처음 고른 곳은 순천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순천만 갈대밭 풍경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부산도 꼭 가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이후로 가본 적이 없었다. 저녁 먹으러 부산 번화가에 갔다가 화려한 야경에 놀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경주는 보통 수학여행의 낭만이 가득한 도시로 기억되지만, 나에게는 그런 추억이 없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천마총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엉엉 울었던 기억만 강렬하게 남아 있다. 안동을 고른 건 오로지 먹을 것 때문이다. 안동찜닭을 안주로 안동소주를 맛보고 싶었다. 정동진은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다 골랐다. 이 시대 연인들의 해돋이 명소. 혹시 영화에서처럼 우연한 로맨스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야무진 꿈이 부풀어올랐다.

 한창 들뜬 마음으로 여행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학교 4학년 동생이 방에 들어왔다.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고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요새 짜증만 나고 불안해. 이제 곧 졸업인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축 처진 동생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기분 전환이 필요한 청춘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서 동생을 이번 여행의 동반자로 낙점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어쩌면 내 청춘의 마지막 풍경이 될지도 모를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설레는 밤도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지 모르겠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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