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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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결승 3국>
○·허영호 8단 ●·구리 9단

제15보(164~179)=승부세계에서 강자와 약자는 서로 모른다. 강자들은 예선에서 탈락하고 쓸쓸히 귀가하는 ‘엑스트라’들의 쓰라린 심정을 모르고 약자들은 우승컵을 놓고 살 떨리는 승부를 펼치다가 패배한 그 어마어마한 아픔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허영호 8단은 국후 “큰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흑▲가 선수가 되면서 흑엔 쾌조의 흐름이 이어진다. 이길 때는 수순이 이처럼 톱니바퀴처럼 맞아들어간다. 164는 어쩔 수 없고 그때 165로 이어 흑은 천신만고 끝에 사지에서 벗어났다. 물론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168로 끊고 170으로 조이면 대마는 아직 패다. 그러나 이 패는 한 수 늘어진 패. 과거 서봉수 9단은 린하이펑 9단에게 세 수 늘어진 패도 진 일이 있지만 늘어진 패는 패도 아니라는 게 프로세계의 정설이다. 172은 가장 작은 팻감. 백에 좌변 대마나 하변 A 등 큰 팻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늘어진 패라서 이 정도로는 부족하기에 아주 작은 곳부터 썼다.

 사실 이 패를 받는다면 ‘참고도’처럼 진행돼 우하 귀가 떨어질지도 모르고 그때는 역전도 가능한 상황. 구리가 재빨리 불청한 것은 현명했다. 174 따냈으나 이곳은 또 패(173=●, 177=■).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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