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편지 <당신과의 저녁 식사(1)-회 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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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났을 때 당신은 회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난 번 내 편지를 읽고 나서 숭어가 먹고 싶다고 했죠. 하지만 서울의 횟집에서 숭어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숭어는 고급 횟감이 아닌 까닭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광어나 농어와 우럭과 도미를 즐겨 먹지요. 참고로 말하면 흐린 날엔 회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 미신의 일종이겠지만 또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사람들 식성이 비오는 날에 날 것(활어)을 먹는 것은 왠지 꺼려합니다. 우선 맑은 날에 비해 체할 확률이 높은 데다 비린내가 유독 코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네, 그러니 앞으로 궂은 날엔 회를 먹지 마십시오.

또 한가지 덧붙여 말하면 모듬회는 가능한 안 먹는 게 좋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것저것 쓰고 남은 것을 모아 접시에 올려놓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우선 광어회를 먹으면서 얘기하죠. 회는 알다시피 일본 사람들이 먹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유럽인들은 일본인의 이 식성을 보고 야만인 취급을 했습니다. 지금은 경제력 때문에 일본에 대한 이해가 잘 돼 있는 편이지만 여전히 유럽인들은 회를 생소하게 생각합니다. 개를 먹지 않듯이 말입니다. 회는 날 것이요 개는 어디까지나 인형처럼 애완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광어는 사실 기름기가 많은 생선입니다. 그와 비슷한 종족 중에 도다리라는 게 있습니다. 둘다 한쪽으로 눈알 두 개가 쏠려 있습니다. 그래서 광어와 도다리는 구분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도다리는 왼쪽으로 눈알이 두 개 쏠려 있고 광어는 오른쪽으로 눈알 두 개가 쏠려 있습니다. 좌도우광이란 말이 이래서 생겨난 것입니다.

또 하나 광어는 양식이 되지만 도다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미가 나빠 가두리에 가둬 키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도다리는 뒤집어 보면 뱃가죽이 노랗고 광어는 하얀 편입니다. 결정적으로 이들을 구분짓는 것은 이빨의 유무입니다. 도다리는 이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빨도 없는 게 성질은 나빠서, 라고 기억하면 됩니다.

회는 알다시피 산 것을 잡아 먹는 것입니다. 그 꿈틀거림을 잔인하게 즐기며 젓가락으로 한 점 한 점 집어먹는 것입니다. 칼을 좋아하고 살생을 좋아하는 섬나라 사람 특유의 음식 문화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맛있는 건 사실입니다.

회는 무채 위에 올려놓는데 냉기가 가시지 않게, 시원하게 먹으라는 뜻입니다. 또 빠뜨릴 수 없는 게 와사비죠. 와사비는 우리 말로 고추냉이입니다. 당근처럼 생긴 뿌리 식물인데 절구에 갈면 연두색의 깔끔한 매운 맛이 나죠.

회 맛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은 상추쌈이나 마늘을 함께 먹지 않습니다. 특히 마늘은 매우 자극적이어서 생선의 고유한 맛을 지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남쪽 사람들은 참기름에 마늘과 된장을 비벼 회를 먹습니다. 참기름은 날 것이 갖고 있는 독을 제거해 줍니다. 마늘과 된장은 소화 효소를 가지고 있어 날 것을 아무리 먹어도 체하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를 새우젖에 찍어 먹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활어를 바로 잡으면 알카리성이 많아 제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카리성은 사라지고 아니노산이란 물질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생선마다 다르긴 하지만 광어의 경우는 잡아서 다섯 시간쯤 냉장고에 넣어뒀다 꺼내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광어의 가장 맛잇는 부분은 회색빛이 도는 지느러미 부분입니다. 아주 고소합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기름기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다이어트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젠가 횟집에 갔다 모듬회를 앞에 놓고 혼자 일본 정종인 월계수를 마시는 여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도꾸리라는 앙증맞은 병을 들고 작은 잔에 한잔씩 따라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횟집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는 여인의 모습이 나로서는 진풍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실연을 한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하긴 실연을 한 여자가 횟집에 앉아 날 것에 정종을 마신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없습니다.

때는 이른 봄이었는데 화사한 투피스 차림에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 요목조목 균형이 잡힌 얼굴이었습니다. 미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앞에 울긋불긋 놓여 있는 모듬회에 가끔 젓가락을 가져가며 정종을 예쁘게 마시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일본 사람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습니다. 분명 우리 여인이었습니다.

한동안 술을 마시다 다시 그녀를 돌아보니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살구나무처럼 앉아 있더군요. 정종 한 잔에 회 한 점. 이런 식으로 그녀는 다분다분 젓가락을 놀리며 내 눈길을 잡아끌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마치 제 살을 부위부위 저며 조용히 한점씩 먹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이 그렇게 관능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늦은 저녁 정갈한 방에 앉아 홀로 제 붉은 혹은 흰 살을 한점씩 저며 먹고 있는 여자. 그때 탁자 위의 검은 화병엔 배꽃이 낭자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회란 이런 음식입니다. 잔인하지만 깨끗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관능적입니다. 산 것을 칼로 떠 놓았기에 긴장감이 서려 있습니다. 이는 여인들이 먹어야 마땅히 어울리는 음식 같습니다. 그걸 대부분의 우매한 남자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회 한 접시에 소주 서너 병을 비워대는 식으로는 절대 회 맛을 알 수 없습니다. 회는 돼지고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 언제 제주도에 가서 당신과 갈치회를 먹고 싶습니다. 달밤에 배를 타고 갈치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말입니다. 갈치회는 제주도가 아니면 먹을 수 없습니다. 이놈도 성질이 고약해 산 채로 서울까지 옮겨올 수가 없습니다. 잡히자 마자 자살하듯 제풀에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제주도가 아직 멀면 그 전에 먼저 속초에 가서 당신에게 숭어회를 맛보게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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