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아이 비만에 가려져 몰랐던 몇 가지

중앙일보

입력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소아비만을 앓는 아이와 부모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전에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소아비만 어린이를 둔 엄마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감이다. 사실 이는 아이의 비만에 가려져 거의 드러나지 않던 요소이다.

요즘처럼 가정마다 한두 자녀 정도만 가진 세태에서 자녀가 가진 소아비만은 부모에게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사실 자신의 온 에너지를 쏟아 자녀를 위해 맞벌이를 하고, 양육과 교육에 정성을 쏟는 것인데, 아이가 소아비만이면 모든 일을 그르친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따라서 부모의 좌절감도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부모 입장에서 소아비만이 성장 장애, 성조숙증, 각종 성인질환, 성인비만의 전초기지라는 점과, 소아비만으로 인해 아이의 지능, 성적, 사회성, 성격, 집중력까지 망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쯤에는 엄마의 조바심과 걱정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또 소아비만 어린이의 상당수가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푸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화목한 가정이라도 고칼로리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비만에 걸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상당 수 소아비만 가족에게는 풀기 힘든, 고도의 스트레스가 잠재해 있고, 이 스트레스를 아이들이 음식을 통해 해소하고 있었다. 사실 별다른 스트레스 해결책이 없는 아이들로서는 음식이 유일한 위안거리일 수 있다.

높은 스트레스 가족의 경우 당연히 엄마의 스트레스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 다음은 최근 접한 한 가지 사례이다.

직장맘 노열심 씨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던 열정적인 커리어우먼이다. 직장에서는 이미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을 받은 바이다. 과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다른 누구보다도 직장 일에 열성을 보였다. 그러나 그 바람에 하나 뿐인 승준이를 챙기는 일은 조금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친정어머니가 딸의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터라, 그녀는 안심하고 직장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아침마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승준이를 가까운 친정댁으로 데려다놓고 출근하기를 몇 년간 반복했다.

그런데 그녀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은 얼마 전이었다. 소아비만 프로그램인 슈퍼키즈를 접하고서 자기 아이의 심각성이 확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제야 아이의 식습관이 완전히 망가져 있으며,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산만하고 폭력적인 성격까지 생겼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늘 우등생이었던 자신과는 달리 성적이 하위권을 맴도는 원인도 찾아낸 것이다. 케이블 방송의 모든 지적들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병원이 그녀의 집에서 제법 먼 곳임에도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매주 내원하는 승준이 엄마에게도 우울증이 있었다. 승준이가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과식과 폭식, 식탐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전할 때에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허먼의 뇌사분면 이론에서 목표추구형인 팩트(fact)형에 가까운 그녀는 감정 표현을 아끼고,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드러내는 일에 서투르다. 이런 감정 표현을 어려워하는 그녀의 성격은 자신의 우울증을 더 심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게다가 그동안 아이의 소아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되자 우울감은 극에 달했다.

지금은 우리 병원 심리센터에서 심리상담, 미술치료, 독서치료 등으로 다소 안정감을 찾은 그녀는 아이의 다이어트 교육에 한결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승준이도 꾸준한 자기주도적 다이어트 교육을 통해 식욕통제력과 다이어트 의지가 높아져 15주 프로그램을 누구보다 잘 이수하고 있다.

최근 소아비만 어린이 치료에서 부모의 마음 치유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새삼 깨닫는다. 가족 모두를 불행으로 내몬다는 점에서도 소아비만은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될 질병이다. 반드시 조기에 치료해야 아이의 몸맘뇌, 부모의 심신, 그리고 가족의 유대감이 훼손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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