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화·정 뺐다고 욕먹었지만 … 급락장선 최고 성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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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가치주 펀드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업종이 주도했던 강세장에선 찬밥 신세였지만 최근의 급락장에서는 특유의 ‘방어 본능’을 발휘하며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주자가 KB자산운용의 ‘KB밸류포커스’ 펀드다. 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탄 17일까지 최근 한 달 동안 이 펀드는 -4.36%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설정액 5000억원이 넘는 국내 주식형 펀드 중 수익률 1위로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12.37%)나 국내 주식형 펀드(-12.9%)가 받은 충격에 비하면 괄목할 성과다.

 2009년 11월 시장에 나온 이 펀드는 지난해 ‘히트 상품’이었다. 한 해 동안 46.68%의 수익을 내며 국내 주식형 펀드 중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상반기에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순위도 중간 이하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전년도에 수익률이 좋았던 펀드가 다음 해는 맥을 못 춘다는 ‘2년차 징크스’와 펀드가 커지면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규모 효과’의 덫에 걸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시장이 출렁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최웅필(사진)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상반기에 부진했다.

 “‘차화정’을 담지 않았다. 세계 경기를 좋지 않게 봤고, 가격도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이들 종목을 편입한 펀드에는 밀렸지만 시장 평균은 앞섰다. 하지만 ‘차화정’을 담지 않아 최근의 급락장에서는 충격이 덜했다.”

 - 시류를 따르고 싶다는 유혹도 컸을 텐데.

 “성과는 좋지 않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꾸준하게 수익을 내는 종목에 관심이 많다. 나쁜 상황에도 크게 깨지지 않는 투자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정적인 절대 수익을 거두는 게 가치주에 투자한 수익자를 위한 도리다.”

 그러면서 그는 “시류에 편승한 투자는 면피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등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안이한 태도라는 것이다. 모두 ‘차화정’만 들고 있으니 언제 반등하느냐만 기다리는 천수답 자세를 갖게 된다고 꼬집었다.

 -다른 길을 가는 이유는.

 “그 시점에 잘 되는 주식을 편입하면 묻어갈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타격이 크다. 똑같은 종목을 들고 있다 먼저 팔려고 나서면서 다 망한다. 그렇게 망가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최근 시장에서도 중소형주나 압축 펀드는 상반기에 올렸던 수익률을 다 까먹었다.”

 그의 안목이 돋보이는 종목은 최근 질주하는 SM엔터테인먼트다. 펀드가 설정된 2009년 11월 3000원이던 주가는 19일 3만2950원에 장을 마쳤다. ‘밸류포커스’ 등 그가 운용하는 펀드가 보유한 지분만 10%가 넘는다. SM엔터테인먼트의 2대 주주다. 회사 가치를 제대로 따져 보기 위해 6월에는 소녀시대 투어가 열리는 일본을 직접 찾기도 했다. CJ제일제당 등도 시장의 충격을 막아 낸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운용 원칙은.

 “가치주는 싸야 한다. 기본적으로 시장보다 30% 정도 싼 기업에 투자한다. 그리고 목표 주가까지 오르면 판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내린 가격에 다시 사들인다. 물론 기업 가치에 대한 확인은 필수다. 오르면 팔고 내린 종목의 비중은 높이는 것이다. 최근 급락장에서 주가가 많이 빠진 ‘차화정’도 좀 편입했다.”

 이 때문에 요즘 같은 급락장이 다시 없는 기회라고 했다. 시장의 충격에도 변하지 않는 기업 가치를 지닌 종목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추락하는 시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가치 투자를 10년 이상 하다 보니 나름 단련됐다. 권투에 비유한다면 상대의 펀치가 계속 날아오는 데 눈을 감고 맞기만 하면 KO패다. 하지만 이제는 주먹이 날아와도 눈을 뜨고 빈틈을 살펴 펀치를 날릴 기회를 보는 것이다. 겁을 먹으면 주식을 내다 팔 수밖에 없다.”

 -유망한 업종이나 종목은.

 “경기방어주 성격을 가진 내수주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에 관심이 커진 것은 통신주다. 일주일 전까지는 별로였지만 저가 메리트가 많이 생겼다. 주가가 떨어지며 배당수익률만 7%가 넘는다. 은행에 돈 넣을 필요가 없다. 배당만 받아도 되니까.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도 있는 휠라코리아와 게임업체인 드래곤플라이도 좋게 보고 있다. 굴뚝주 중에서는 고려아연의 모회사인 영풍의 편입을 늘려 가고 있다. 영업이익이 배 이상 늘어난 데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라는 것도 매력적이다. ”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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