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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제주 해군기지 건설 진실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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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정치쟁점화하고 있다. 해군은 해양주권과 국익 보호 차원에서 이 기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평화, 생태환경, 생존권을 이유로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반대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교착의 연속이다. 

 반대진영의 핵심 화두는 단연 평화 문제다.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우선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비무장 평화지대를 전제로 하는 이 구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기지가 장차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용 미사일방어(MD) 체제에 활용될 수 있어 제주지역이 강대국 패권 대립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는 주장이다. 자칫 중국의 선제 혹은 보복타격의 대상이 될 수 있을뿐더러 동북아에서 해군력 군비경쟁을 촉발시켜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고향이 제주인 필자로선 제주가 비무장 평화지대화되는 것을 바랐다. 그래서 지난 정부에서 ‘제주 세계평화의 섬’ 구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 제약을 간과하기 어렵다. 원론적으로 동북아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과 헌법상의 제약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인 제주가 혼자 비무장 평화지대로 남을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6월 22일 제주도민들과의 오찬에서 “비무장 평화는 미래의 이상이고, 무장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또한 당시의 ‘세계평화의 섬’ 선포문 어디에도 비무장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세계평화 증진 및 확산을 위한 평화실천사업”을 제주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하겠다고 강조했을 따름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제주가 연구와 교육, 교류의 역내 중심거점으로 자리잡게 하자는 게 당시 정부의 의도였다. 이렇게 보면 ‘평화의 섬’이기 때문에 기지를 건설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이 구상의 당초 정책취지와는 분명 거리가 멀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제주기지 건설을 결정한 데에는 자주국방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었다. 당시 대통령의 주된 관심사는 미 해군력의 지원 없이도 12해리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 영해 기준선으로부터 350해리에 걸쳐 있는 대륙붕에서 우리의 해양주권과 국익을 보호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제주에 해군기동전단을 전진 배치하지 못하면 남방 먼바다에서의 우발적인 해상충돌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따라서 제주기지 건설 결정은 미국과 공조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 해군의 영향력이 감소했을 때를 대비한 자주국방 차원의 예방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제주기지는 미 해군에 그리 매력적인 시설도 아니다. 일단 강정항은 중국과 지나치게 가깝다. 인민해방군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사정권 안에 있는 제주에 최신예 전투기 70여 대 이상을 탑재한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을 전진 배치할 이유가 전혀 없다. 원자력 추진 항모는 연료 수급을 위해 제주에 기항할 필요도 없다. 특히 2021년까지 4000억~8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국방비 감축을 단행해야 하는 미국이 태평양 해군전력을 증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강정이 장차 미 해군의 전략기지화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현실과 괴리가 있다.

 왜 이러한 오해가 생기는 건가. 여기에는 그간 한·미동맹 강화에만 역점을 두며 MD 문제에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해온 이명박 정부의 책임도 있다. “(미 항모가 제주에) 오려면 올 수도 있다”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발언만 봐도 그렇다. 8월 5일자 ‘뉴욕 타임스’에는 강정 기지에 관한 문의에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우리에게 전화하지 말고 미 국방부나 국무부에 문의하라.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사람들은 그들”이라고 답했다는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정부가 도리어 의혹을 증폭시키는 진앙 구실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 국면에서 반대세력을 ‘종북 좌익’으로 매도한다고 사태가 수습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적극적인 대화와 설명에 나서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가 우리의 국익을 위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면 누가 감히 반대하겠는가. 야당이나 시민단체 역시 이미 14%까지 공정이 진행됐고 공사 중단으로 매월 59억원씩 손해가 불어나고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대승적 관점에서 사안을 냉정히 판단할 때 논란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길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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