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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수해 지원, 현장 조사가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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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상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북한이 연일 수해 피해를 부각시켜 보도하고 있다. 남한 내 일각에서도 우리 정부가 시급하게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수해를 당한 북한 동포를 돕는 것은 동포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의무일 것이다.

 대북 수해 지원은 먼저 피해에 대한 현장 조사가 있어야 한다. 현장조사 없이 지원 규모를 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북한은 수해 지역 현장조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그들의 발표만 믿고 “통 크게 지원해 달라”며 쌀·밀가루 등 식량과 시멘트·중장비까지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북한이 발표한 피해 규모를 믿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재해나 대형 사고의 피해 규모를 부풀려 알리곤 했다. 올해도 북한은 지난 7월 대동강 변의 홍수 사진을 조작함으로써 피해 부풀리기를 했다.

 대북 수해 지원의 분배 투명성도 확보돼야 한다. 과거 우리가 지원한 물품이 북한에서 군사적으로 전용되거나, 김정일 하사품으로 전환돼 피해 주민이 아닌 북한 특권층에 전달됐기 때문이다. 또 수많은 탈북자들이 지원 물품이 수해 당사자들이 아닌 당 간부와 군에 전용돼 왔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유엔이 식량 분배를 감시하면 하루분 식량만 나눠줬다가 유엔 관리들이 돌아가면 회수하고 있다는 진술도 있다. 지원 물품은 수해를 당한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돼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원칙에 맞지 않는 대북 지원은 북한 특권층의 배만 불리고, 군량미로 전환돼 총칼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북한 스스로의 자구노력이 있어야 한다. 북한은 권력층을 위한 고급시계와 같은 명품과 고급 주류 등 기호품의 수입을 늘리면서도 수해 피해 주민들을 위한 식량 수입 규모는 늘리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이 피해 주민들을 위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에 도움만 호소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김정일이 피해 지역을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실태를 무시한 감성적 대북지원 주장은 인도적 지원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현장 조사, 분배 투명성 확보, 북한의 자구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인도적 지원은 북한 동포에게도, 남북관계의 진정성 있는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상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