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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에서 금맥을 캐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간 유전자 암호를 상용화하려는 경쟁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월街에선 몇몇 회사의 주가가 내일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1천%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셀레라 제노믹스社의 크레이그 벤터 사장은 레이스를 즐긴다. 이 자신만만한 과학자는 요트 레이스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그가 소유한 전장 25m짜리 요트 소서러號는 주인을 닮은 마법사 형상(원뿔형 모자 등)의 6m짜리 삼각돛을 자랑한다. 이제 그는 그 정열과 추진력을 정부가 후원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레이스에 쏟고 있다. 인체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그 경기에는 아주 큰 보상이 걸려 있다. 그의 회사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신·최고속 컴퓨터를 계속 사들인다. 회사 주가의 상승행진을 볼 때 벤터는 요트를 더 고급으로 바꾸고도 돈이 남을 것이다.

인간 유전자 암호의 신비를 상용화하려는 경쟁이 밀레니엄 주식시장에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게놈 기술은 약품게놈학·생명정보학과 같은 공상과학 영화에나 등장할 듯한 유행어를 포함해 요즘 투기성의 초단기 자금이 좋아하는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인터넷의 주식투자 대화방은 유전자 마법사·복제인간·시퀀스(서열) 맨 등의 닉네임을 가진 생명공학 신봉자들로 가득하다.

아직 생성단계이기 때문에 알려진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지만 요즘 투자자들은 그것을 ‘가능성’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생명공학 기업들의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매출과 이익을 무시한 채, 만의 하나 어쩌면 내일의 마이크로소프트·인텔, 혹은 시스코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눈깜짝할 사이에 주가를 1천% 이상 끌어올리는 풍조를 낳았다.

그런 자금이 특정한 개별 기업으로만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생명공학 회사들은 그런 기초연구로부터 판이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예컨대 우선 ‘곡괭이와 삽’형 기업이 있다. 골드러시 때 실제로 돈 번 사람은 광부들에게 장비를 판 장사꾼들뿐이었다는 사실을 빗댄 표현이다. 게놈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장비 메이커 PE 바이오시스템스社, 1회용 마이크로칩 위에 유전자 서열을 분석하는 ‘진칩’(GeneChip) 시스템을 개발한 어피메트릭스社 등이 이에 해당된다.

다음에는 셀레라·인사이트 같은 소프트웨어 서비스 업체가 있다. 예컨대 블룸버그社가 증권사와 투자자들에게 맞춤형 금융 데이터를 판매하듯 그들은 제약회사와 연구소에 유전자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인사이트는 이미 25개의 회원사를 자랑하며 유전자 서열 분석에 막강한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는 셀레라社가 이 분야에서 우위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끝으로 대형 제약회사로의 도약을 노리는 휴먼 게놈 사이언시즈(HGSI)·밀레니엄 제약 같은 회사들이 있다. 그들은 사내 유전자 연구를 활용해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약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많은 기존 제약회사들이 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수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단계에서는 실체 못지 않게 이미지도 중요하다. 성공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이는 회사의 주가가 가장 높이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덩치 작은 경쟁업체 인수와 인재 스카우트, 그리고 고비용의 신기술 투자를 위한 자금이 생긴다.

그래서 생명공학업체 경영자들은 TV 출연·기자회견 등 회사 홍보에 열을 올린다. 요즘의 홍보전에서는 벤터 셀레라 사장과 HGSI의 윌리엄 A. 해젤타인 회장이 선두 그룹이다. 한때 벤처회사 동료이기도 했던 그들은 그 후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지금도 두 사람의 본사는 메릴랜드州 로크빌의 지척에 위치해 있다. 둘 다 과학자에서 출발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뛰어난 흥행사이기도 하다.

벤터는 기성체제에 반발하는 이단아 역할을 즐긴다. 그는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서핑에 빠져 지냈으며 베트남전 때 응급환자 선별작업을 하면서 과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美 위생연구소를 거쳐 사설재단인 게놈 연구소 설립에 참여한 후 셀레라를 창업했다. 언론에서는 그를 코페르니쿠스·갈릴레오·뉴턴·아인슈타인에 비유한다. 그는 자신의 원대한 비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컴퓨터의 발전속도가 우리가 요구하는 계산능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뉴욕과 워싱턴 D.C. 사교계의 붙박이 멤버인 해젤타인은 기성체제 쪽에 가깝다. 에이즈에 관한 최첨단 연구와 여러 회사의 설립 등 과학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온 그는 HGSI도 그 리스트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는 이미 미래의 역사책에 그려질 자신의 좌표를 정립하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미 내가 만든 패러다임이 폭넓게 채택되고 있으며 내가 그런 변화의 촉매 역할을 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회사 사무실 벽을 장식하는 미술작품을 직접 선정하며 교양인의 이미지를 함양하고 있다. 98년 결산보고서에는 15∼16세기의 대사·귀족·철학자들의 그림이 가득하며, 맞은 쪽에는 비슷한 포즈를 취한 회사 간부들의 그림이 올라와 있다. 해젤타인의 사진은 피렌체 출신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전면 그림을 마주하고 있다. 도메니코는 포부와 성실성뿐 아니라 돌출행동으로도 유명했다.

게놈 업계는 아직 태동단계이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 못지 않게 대형 호재성 발표에 의해 좌우되며 그 실상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셀레라는 인간 게놈의 90%에 상당하는 DNA 서열을 확보했다고 선전한다. 해젤타인은 4년여 전 사실상 모든 유전자의 95%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인사이트의 최고경영자 로이 휘트필드는 “우리는 게놈 혁명의 앞날을 결정짓는 중요한 첫 단계에서 누구보다 많은 유전자의 서열을 발견하고 특허를 취득해 널리 라이선스했다”고 말했다.

게놈 업계 경영자들은 또 툭하면 서로 헐뜯는다. 벤터는 게놈 서열화 작업에 참여한 다른 과학자들을 ‘거짓말쟁이 클럽’으로 불렀다. 비용이나 실적을 측정하는 방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해젤타인은 종종 인간 게놈을 최초로 서열화하겠다는 벤터의 노력을 가리켜 비현실적이라며 “방향감각을 상실한 레이스”라고 폄하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그런 과대선전을 근심어린 눈길로 바라본다. 의회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관해 증언한 바 있는 워싱턴大 유전학 교수인 메이나드 V. 올슨은 ‘보도자료(홍보)에 의존하는 과학’의 증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게놈 회사들이 거창한 주장을 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어쨌든 그들 제품에 대한 정상적 시장이 수년 내에 형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벤터조차 올해 자기 회사가 생산하는 모든 데이터를 완전 이해하려면 앞으로 1백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따라서 새 치료법을 찾는 사람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편 투자자들은 새로운 뉴스를 갈구하고 있다. 최근 한 생명공학 신봉자가 인터넷 대화방에 써놨듯 “다음에 언제 어떤 발표가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요즘 가장 뜨거운 경쟁은 누가 먼저 주식거래 계좌의 매매 버튼을 클릭해 게놈 기술 골드러시에 뛰어드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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