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얼굴02] 축구신동 마라도나

중앙일보

입력

디에고 알만도 마라도나 (Diego Armando Maradona)가 ‘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저절로 감탄사를 발하게 만들었다. 60여미터를 단독으로 드리블해 아홉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결승골을 터뜨렸던 광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스포츠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펠레로부터 남미 축구의 전통을 이은 마라도나는 1960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펠레와 마찬가지로,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에게서 어려서부터 축구를 배우며 자랐고, 1976년 아르헨티나 프로무대에 데뷔한 때도 만 16세가 채 안 돼서였다.

1979년 마라도나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시키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FC Barcellona같은 유럽 명문팀들에서 차례로 뛴 그는 ’82 년 드디어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월드컵 첫 출전에서 그는 펠레와 같은 맹활약을 하진 못했다. 21살의 어린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대한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고, 경험 부족에서 비롯한 미숙한 모습을 곳곳에서 노출시키며 브라질과의 예선 전 도중 교체되고 말았던 것이다.

4년간 절치부심한 마라도나는 ’86 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월드스타로 탄생했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시포의 벨기에와 마테우스의 서독을 차례로 꺾고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던 것이다.

멕시코 대회 이후 마라도나는 Napoli에서 뛰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도 드리우는 법. 상대팀의 집중 마크를 받게 된 그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비수에 신경질 적으로 반응, 계속되는 부상에 시달렸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에 대한 상대팀의 견제는 더욱 심해졌다. 예선과 본선 경기를 치르며 집중마크에 피곤해질 대로 피곤해진 마라도나는 4년전 결승에서 맞붙었던 서독팀을 맞아 분투했으나 1대 0으로 분패, 우승컵을 넘겨주고 말았다.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코카인 복용 등의 이어지는 스캔들로 선수 생활을 접는 듯 보였던 마라도나는 다시 ‘94년 미국 월드컵에 복귀한다.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아르헨티나팀을 지휘하며 천재적인 축구 감각을 과시했다. ‘차세대 스타’ 바티스투타는 마라도나의 도움으로 헤트 트릭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회 도중 다시 불거진 약물 복용 파동으로 마라도나는 미국을 떠나게 됐다. 마라도나가 빠진 아르헨티나는 강자의 면모를 상실한 채 16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마라도나는 화려한 개인기만큼 다양한 스캔들로 세계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선수는 경기에서 말하는 법.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축구 신동’으로서의 플레이와 축구사에 남긴 발자국은 영원히 스포츠 역사에 빛나는 별로 남아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