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9급 35년 만에 복지부 국장 “노력하면 반전 기회 언젠가는 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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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노력하면 학력은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그런 사람을 알아본다.” 16일자로 단행된 보건복지부 인사에서 국장으로 승진한 설정곤(54·사진) 신임 첨단의료복합단지조성사업 단장은 이같이 말했다. 설 단장은 이번 인사로 고졸 학력의 9급 서기보로 출발해 중앙부처 국장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공무원이 됐다.

 강원도 속초 출신인 설 단장은 1976년 속초고를 졸업하자마자 강원도 묵호검역소 서무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취업을 선택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진학의 꿈까지 완전히 접지는 못했다. 그는 공무원이 되던 첫 해에 방송통신대 행정학과에 응시했다. 그러나 업무가 많아 학업을 병행하기가 만만치 않아 중도에 그만뒀다. 그 후에도 한 번 더 방송대 입학시험을 치렀지만 이번에는 눈이 문제였다. 고도근시에 난시가 심했는데 만성 결막염에까지 시달려 책을 오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학업보다는 업무에 몰두하기로 마음 먹었다.

 설 단장은 “학교에서는 이론을 배우지만 현실에서는 업무의 숙련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학업을 병행할 시간에 업무를 더 열심히 배우고 싶어서 대학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설 단장은 공직생활 초기 4년간 기획예산담당관실에 근무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야근과 밤샘을 밥 먹듯 하며 복지부 업무 전반을 배웠다. 보험정책과에 근무할 때는 의료보험 확대 개편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91년 사무관 승진 시험에서는 서열이 앞선 30여 명을 제치고 당당히 합격해 행정고시 출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꼼꼼한 일 처리를 인정받아 국무총리실과 대통령비서실 기획단 파견을 포함해 연금제도·의료정책 등 주요 업무를 두루 거쳤다.

 좋은 학벌에 고시 출신 동료들 사이에서 느끼는 핸디캡은 없었을까.

 설 단장은 “비(非)고시 출신이라도 업무를 충분히 숙지하고 직원들의 속마음을 잘 챙기면 뒤쳐질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가정형편과 대학진학 문제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설 단장은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어렵더라도 용기와 도전의식을 갖고 노력하면 언젠가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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