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철도 ‘속도전’ 급제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 남베이징역에서 고속철이 빠른 속도로 역을 떠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0일 고속철을 포함한 모든 열차의 최고 속도를 일률적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베이징 AP=연합뉴스]

고속 질주해온 중국 철도 전반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최고 속도를 일률적으로 낮추고, 요금도 내리기로 했다. 완공된 고속철 개통을 늦추고, 신규 고속철 사업 승인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달 23일 발생해 40명이 숨진 원저우(溫州) 고속철 추돌 참사를 계기로 ‘속도전’ 대신 안전을 요구하는 분노한 민심을 반영한 파격적인 조치다. 이로써 그동안 중국식 고성장을 상징해 온 ‘중국 속도’가 ‘안전 속도’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정부는 10일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원(중앙정부)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성광쭈(盛光祖·성광조) 철도부장은 신설 고속철인 허셰하오(和諧號)와 기존 열차의 최고 시속을 등급별로 일률적으로 40∼50㎞ 낮추도록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시속 350㎞로 설계됐던 신설 고속철은 시속 300㎞로 감속 운행된다.

철도부에 따르면 베이징(北京)∼톈진(天津), 광저우(廣州)∼우한(武漢), 정저우(鄭州)∼시안(西安), 상하이(上海)∼난징(南京), 상하이∼항저우(杭州) 등 5개 노선의 설계 시속이 350㎞다. 베이징∼상하이 고속철은 안전 논란 와중에 6월 30일 개통하면서 최고 속도를 이미 300㎞로 낮췄다. 광저우∼우한, 정저우∼시안, 상하이∼난징 구간도 비슷한 시점에 속도를 줄여 운행해왔는데 이번 조치로 감속 운행에 못이 박혔다. 원저우 고속철 추돌 사고 이후에도 최고 시속 350㎞로 운영돼온 베이징∼톈진, 상하이∼항저우 구간은 이번 조치에 따라 300㎞로 감속 운행하게 됐다.

 최고 시속 250㎞로 설계됐던 기존 고속철은 시속 200㎞로 감속된다. 이 구간은 기존 철로의 지반을 보강해 둥처쭈(動車組)의 운행이 가능한 구간이다. 둥처쭈는 자체 동력을 갖춘 열차를 세트로 연결한 중국식 고속철이다. 또 최고 시속 200㎞로 운행되던 일반 열차는 시속 160㎞로 속도가 낮아진다.

 중국 철도부는 1997년 4월 1일부터 열차 속도 높이기에 혈안이 돼왔다. 고속철을 새로 까는 방식 외에도 기존 철로를 보강해 고속 운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을 병행해 왔다. 특히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던 류즈쥔(劉志軍·류지군·구속 중)이 철도부장으로 부임한 2003년 이후 “중국 철도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야 한다”며 속도를 지나치게 독려했다.

 하지만 올 2월 류 부장이 비리 혐의로 낙마하면서 기존 철도 정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원저우 고속철 사고를 계기로 안전을 소홀히 한 채 속도만 강조해온 철도부의 ‘속도 지상주의’에 대해 민심의 역풍이 불면서 대대적인 정책 조정이 예고됐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