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개인투자자 … 오늘은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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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직장인 김성식(31)씨는 요즘 머릿속이 복잡하다. 최근 주가가 급락한 걸 보면서 여윳돈 1200만원을 주식에 넣을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언젠가 주가가 다시 오르리라는 생각은 든다”며 “하지만 미국 경제가 호전될 가능성이 작어 지금 사면 걱정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부인·친구 등과 상의까지 한 김씨는 결국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건 당분간 포기하기로 했다.

 #회사원 이모(40)씨는 10일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 많이 낮아졌다는 판단에서다. 이씨는 그러나 11일 증시가 왔다갔다하는 흐름을 보고 조만간 이 주식을 다시 팔 계획이다. 이씨는 “주식의 흐름이 어떻게 될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코스피 지수가 지난 2일부터 9일까지 370.96포인트(17.08%) 주저앉은 뒤 개인 소액투자자들이 고민에 빠졌다. 주식을 살지 말지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려워서다.

 이런 투자자의 고민은 11일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이날 코스피 시장이 열리자 개인투자자들은 ‘팔자’에 나섰다. 전날 외국인 투자자의 매물 폭탄에 맞서 사상 최대인 1조5559억원어치를 사들인 것과 대조적이었다. 40여 분간 물량을 쏟아내던 개인은 이후 ‘사자’ 주문을 늘리기 시작해 오전 10시17분부터는 순매수로 돌아섰다. 그러던 개인투자자는 11시21분에는 순매도로, 오후 2시18분에는 다시 순매수로 갈아탔다. 시장이 열린 6시간 동안 세 차례나 방향을 바꿔 가며 ‘갈지자 행보’를 보인 끝에 개인은 결국 752억원(오후 3시 기준)을 사들이며 장을 마쳤다. 반면에 순매수로 시작해 장 초반 ‘팔자’로 전환한 외국인(2851억원 순매도), 그리고 기관(1749억 순매수)은 묵묵히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72포인트 넘게 내린 뒤 출발해 등락을 반복하다 11.2포인트(0.62%) 오른 1817.44를 기록했다.

 갈피를 못 잡기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인투자자가 많이 찾는 증권포털사이트 ‘팍스넷’의 게시판에선 증시 전망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증시가 미끄럼을 탄 뒤 이곳엔 4000개가 넘는 글이 올라왔다. 평소보다 7배 많은 수준이다. 게시판에선 “떨어지는 칼날을 잡으면서 저가 매수했다고 하면 안 된다”(아이디 ‘깽하고해뜰날’)와 “걱정 붙들어매고 개미들 가열차게 매수하자”(아이디 ‘두꺼비광부’)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은 ‘암울한 미래’를 점치고 있다. 매수에 부정적 의견이 열에 일곱 정도다. 다른 사이트 게시판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증권사 지점으로도 문의가 빗발쳤다. SK증권 지점 관계자는 “급락세가 주춤하고 나니까 고객 전화가 부쩍 늘었다”며 “거래 주문보단 대부분 걱정을 늘어놓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최창호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본부장은 “개인투자자는 불안한 시장에서 외국인이나 기관이 리드한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 통계도 개인보다 외국인이 살 때 주가가 오를 확률이 70% 정도로 더 높다”고 말했다. 과거 ‘개미의 설움’을 겪은 개인투자자가 경험칙에 비춰 증시를 더 비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더 혼란스러운 이유는 뭘까. 이성호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개인은 불안할 때 집단에 묻어 가려는 ‘군집행동’을 한다”고 말했다. 혼란한 상황에서 개인은 주위 의견에 귀를 더 기울이고 이 결과 집단의 움직임에 쉽게 쏠리게 된다는 얘기다.

허진 기자, 하지혜 인턴기자(충남대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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