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은 맛있는 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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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해해. 아마 맛있게 먹던 과자 뺏긴 기분일거야.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 그래 그럼 쉬어라. 난 할 일 있어. 너는 쉬고 나는 일하고, 됐지?"
이 말은 드라마 〈불꽃>의 종혁(차인표)이 약혼녀 지현(이영애)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맛있게 먹던 과자'란 지연이 종혁 집안의 강압에 의해 포기하게 된 드라마 작가로서의 일을 의미한다.

약혼자가 '맛있게 먹던 과자'라고 표현한 지현의 일은 그녀가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끼며 몰두하고 있던 드라마 대본 작업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행지에서의 하룻밤을 용서(?)받는 대가로 자신의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반대의 상황을 한번 가정해 보자.
종혁이 여행지에서 첫눈에 반할 만큼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 그리고 불꽃같은 하룻밤을 보냈다. 이후 일상으로 돌아와 보니 둘 다 약혼자가 있는 처지였고, 각자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사실을 약혼자가 알아 버렸다. 그렇다면 종혁은 약혼자와의 결혼을 위해 자신의 중요한 일을 포기해야 할까?

같은 상황에서 지현이 종혁에게 '니가 맛있게 먹고 있던 과자를 포기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답은 물을 것도 없이 '아니'다. 왜?

첫째, 남자의 일은 여자의 일보다 중요하니까.
둘째, 남자의 하룻밤 불꽃은 용서가 되니까.
셋째, 남자에게 일은 여자와의 사랑보다 중요하니까.
넷째, 남자가 여자보다 일에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성공할 확률이 높으니까.
다섯째, 여자의 일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까.
여섯째, 여자의 하룻밤 불꽃은 마땅히 응징 받아야 하니까.
일곱째, 여자에게는 일보다 사랑과 결혼이 중요하니까.
이밖에도 너무나 많은 이유들....

그러나 여자의 일은 단순히 '맛있는 과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일을 그만두는 것은 맛있게 먹던 과자를 뺏기는 정도가 아니며 그럴듯한 사랑과 보장된 결혼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학년 여대생의 꿈은 자기 분야에서 전문직 여성이 되는 것이다. 4학년 여대생의 꿈은 좋은 직장 잡고 괜찮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생활 3,4년 후에는 '되는 일도 없고 특별히 목숨 걸만한 사랑도 없는데 이왕이면 더 늦기 전에 조건이라도 좋은 남자와 결혼하자'로 바뀐다. 〈불꽃〉의 지현이 그랬듯이.

이처럼 20대 여자가 갖는 일·사랑·결혼과 성공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네가지가 모두 공존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택해야 하는 양자택일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여자를 변하게 한다.

그러나 양자택일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게임에서 여자는 승자가 될 수 없다. 조건 좋은 결혼이든, 목숨거는 사랑이든, 일에서의 성공이든 이중 어떤 것을 택하는 순간, 그것으로 게임은 끝나 버리고 그 모든 것을 갖고자 했던 꿈도 비극적 현실에 백기를 든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다른 몇가지를 잃어야만 하는 패자의 게임이 바로 일하고자 하는 여자들이 한번쯤 치러내야 하는 곤혹스런 게임이다.

여자의 일과 사랑, 결혼이 더 이상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기를, 결혼의 협상조건으로 여자의 일이 거론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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