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허썬, 사범학교서 마오 만나 혁명의 꿈 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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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호 29면

몽타르지에서 프랑스인 여교사들과 함께한 근공검학 여학생들. 차이허썬의 모친 거젠하오(앞줄 왼쪽 둘째)는 근공검학생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 둘째 줄 오른쪽 첫째가 차이허썬의 동생 차이창. 리푸춘과 결혼했다. [김명호 제공]

두 패로 갈라졌던 프랑스 유학생들에게 연합의 계기를 마련한 멍다얼파 영수 차이허썬(蔡和森·채화삼)은 후난(湖南)성 말단 관리의 아들이었다. 13세 때 고추기름 공장에 취직했다. 3년간 열심히 일했다. 할 짓이 못됐다. 동갑내기 주인 아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허구한 날 “아버지가 죽으면 공장 때려부수고 멋있는 술집을 차리겠다. 꿈이 이뤄지면 예쁜 여자애들 구하러 전국을 다니다가 길바닥에서 죽어도 좋다. 천하의 미인들을 한곳에 모아놓으면 손님들이 얼마나 좋아할까!”라며 즐거워하다가 “아버지가 너무 건강하다. 이것도 내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는 철부지였다.
한 차례 두들겨 패고 직장을 때려치울 심산이었지만, 천성이 못난 놈이라는 생각이 들자 “훗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공장을 떠났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29>

초등학교 3학년에 입학했다. 한 학기 다니다가 중학교 시험에 합격했다. 입학규정이 까다롭지 않던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면 신문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한 장 들고 화장실에 갔다. ‘혁명이 일어났다’며 쑨원(孫文·손문)이라는 사람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들여다봤던지 한참이 지나서야 앞에 서있는 친구가 배를 움켜쥐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알았다.

소년공산당 서기 시절의 자오스옌. 차이허썬과 쌍벽을 이뤘다.

2년 후, 성립사범학교에 최고성적으로 합격했다. 2살 위인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을 만났다. 형이라 따르며 매일 붙어 다녔다. 창사(長沙) 고등사범학교도 같이 진학했다. 문학·역사·철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한번 책을 잡으면 침식을 잊기 일쑤였다. 잡지 신청년(新靑年)을 구독하며 민주(民主)와 과학(科學)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차이허썬은 사범학교를 졸업했지만 교단에 서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고향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마오쩌둥과 함께 스승 양화이중(楊懷中·양회중)의 집에 머무르며 혁명단체 설립에 동분서주했다.

모친 거젠하오(葛健豪·갈건호)가 아들과 같이 살겠다며 딸 차이창(蔡暢·채창)을 데리고 창사로 이사 왔다. 웨루산(岳麓山·악록산) 언저리에 싸구려 빈집들이 많았다. 인근에 천년학부(千年學府), 악록서원(岳麓書院)이 있었다. 몇 년 후 52세 나이에 아들 따라 프랑스 유학을 떠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후일 신중국 초대 부녀연맹 주석 차이창도 마찬가지였다.

1918년 4월, 차이허썬의 집에서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최초의 혁명단체라고 해도 좋을 신민학회(新民學會)가 발족했다. 차이는 신민(新民)이라는 두 글자 속에 진보(進步)와 혁명(革命)의 의미가 다 담겨 있다고 회원들에게 설명했다. 회원들 간의 통신집도 만들었다. 마오쩌둥과 주고받은 서신이 가장 많았다.

멍다얼파와 시시콜콜 대립하던 쓰촨(四川)파 영수 자오스옌(趙世炎·조세염)은 1901년, 충칭(重慶)의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자식 교육이라면 돈을 물쓰듯하던 집안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 영국인 가정교사가 있었다. 둘째 형은 쑨원이 일본에서 만든 동맹회(同盟會) 회원이었다. 변변치 않았지만 손아랫사람들에게 영향을 잘 끼치는 그런 부류였다. 자오스옌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13세 때 베이징 사범 부속중학에 입학했다. 지리 시간에 아편전쟁과 홍콩 할양(割讓)을 설명하며 “서구열강이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며 통곡하는 선생이 있었다. 자오스옌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그날 밤 자오스옌은 차이허썬 집안과 어깨를 나란히 할 홍색명문(紅色名門)의 탄생을 예고했다. 민족 영웅 악비(岳飛)의 시로 알려진 만강홍(滿江紅)의 한 구절을 반복해 읽으며 날 새는 줄 몰랐다. “오랑캐의 살점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흉노의 피로 목을 축이며 웃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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