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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꽃꽂이에 빠지고, 명품 벼루 집착한 양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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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천년 벗과의 대화
안대회 지음, 민음사
250쪽, 1만4000원

우리가 “옛 사람들은… ”이라고 말할 때, 그 옛 사람들은 부족한 정보로 뭉뚱그려진 실체 없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국내 대표적인 고전문학자인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과)가 쓴 『천년 벗과의 대화』가 던져준 질문이다. 책은 지은이가 그 동안 읽은 옛 책에서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의 단상을 곁들인 것인데, 파격적인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양반은 비천한 계급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깬 심대윤(1806~1872)도 그 중 한 사람. 명문가의 후예로 100여 책의 저술을 남길 만큼 대학자로 손꼽히는 그는 아우들과 소반(小盤)을 만들어 파는 일도 기꺼이 했다. 흉년이 든 해, 마을로 찾아 든 통영 장인의 기술을 눈여겨보았다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경험을 ‘치목반기(治木盤記)’, 즉 ‘소반을 만들며’란 글로 남겼다.

 “나는 평생 신경을 쓰고 힘을 들여서 조금이라도 물건을 만들어 낸 노력이 없는데 (…) 이제 일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끄러움이 사라졌다.” 더 나아가 “장인을 지금 사람들은 천하게 여기지만 훗날에는 귀하게 여길지 어찌 압니까”라는 말도 남겼다.

 『자저실기(自著實記)』를 쓴 심노승(1762~1837)도 눈에 띈다. 병이라 할 정도로 성(性)에 집착하고 무뢰배와 어울린 일 등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자식들에게 맡기면 치부를 감출 것이고, 남에게 맡기면 곡해되기 쉬우므로 “스스로 속임 없이 진실되게 쓰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신념을 지킨 것이다.

 일본 원예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꽃꽂이 심취했던 원굉도(1568~1610), 친구의 명품 벼루를 들고 내뺄 만큼 ‘벼루광’이었던 유득공(1749~1807)도 있었다. 정원을 갖춘 대저택에서의 품격 있는 삶을 상상하며 16권 7책의 『숙수념(孰遂念)』(누가 내 꿈을 이뤄줄까라는 뜻)을 쓴 홍길주(1786~1841), 부부간에 시를 주고 받으며 문집을 함께 남기고 자녀와 독서와 토론을 즐긴 홍인모(1755~1812) 이야기도 흥미롭다.

 책에 소개된 50여 개의 일화는 간결하지만, 애틋하고 뭉클하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옛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우리 주변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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