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과 미술과 詩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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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가 원일.황신혜밴드.한대수.이상은과 시인 황지우.정현종, 그리고 화가 김홍주.안창홍 등의 작품을 한 권의 시화집과 음반으로 묶었다.

'도시락 특공대 2' .1997년 선보인 1집이 언더와 오버, 인디와 메이저의 가로지르기를 시도한 것이라면 2집은 장르 가로지르기로 '도(圖)시(詩)락(樂)' 본래 의미에 더욱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작업을 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통된 주제를 다룬 것도 아니면서 다른 장르의 작가 26명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가 관심을 끈다.

"각기 장르가 다른 작가들간에 공동작업 같은 실험은 없었다.
공통된 주제도 없다.하지만 이들은 80.90년대를 거쳐오면서 자신의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이란 점에선 닮은꼴이다.이들의 만남 자체가 우리 문화가 살아 꿈틀거림을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황신혜밴드의 리더로 문화 가로지르기를 꾀해온 김형태씨가 밝힌 기획의도다.

작가들이 따로 작업해 얻은 결실인데도 마치 사전에 깊은 교감이 있었던 듯 작품들이 묘한 조화를 보여준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민경숙의 그림 '무제' (1992)와 이윤학의 시 '지하주차장' 도 그런 예. 귀퉁이에 자그마한 침대가 하나 놓여 있고 우울한 표정의 남자가 볼록 거울에 투영된 그림에 실린 "…빚이나 갚고 죽고 싶다" 는 시구는 영락없는 짝처럼 보인다.

일상의 풍경을 섬뜩할 만큼 강렬한 이미지로 그린 안창홍의 그림과 삶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통찰을 담아낸 김기택의 시도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시화집엔 김홍주.안창홍 외에 김명숙. 전금자. 김지원. 박형진.이동기 등이 참여했다. 시는 정현종.이제하.황지우.최승호.장경린.김기택.이윤학의 작품이 실렸으며 소설가 박상륭은 음악에 대한 철학적 단상을 '소리꽃' 이란 제목의 에세이에 담았다.

음반작업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에서도 평소 작품에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이들 모두 '싱어 송 라이터' 라는 점과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개성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고집쟁이란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

성기완의 기묘한 블루스 샘플링곡인 '좋아 미쳐 블루스' 를 비롯해 시인 출신 가수 위승희의 '사랑학 개론' , 신대철의 인도 전통악기 시타르 연주곡인 '라니' , 자메이카 랩과 한대수 특유의 보컬이 한데 어우러진 '미치게 해' , 이상은의 국내 미발표곡 '액추얼리, 파이널리' 등 11곡이 수록돼 있다.

장사익의 셀프 리메이크곡인 '삼식이' 를 제외하면 모두 다른 음반에서 들을 수 없는 신곡.미발표곡들이다. 판에 박은 듯한 가요에 식상해진 음악팬이라면 개성이 뚜렷한 이들의 음악에 매료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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