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된 박준형 “개그, 실패가 쌓여 완성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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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통시장 좌판에서 시작해 기업을 일군 셈이다. 박준형(36·사진) 갈갈이패밀리엔터테인먼트 사장의 지난 10년 말이다. 그는 대학로 소극장 관객 한둘 앞에서 개그를 시작해 개그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의 회사는 개그맨 이수근·정형돈·김병만을 배출했고 오지헌·임혁필 등 50여 명의 개그맨이 소속돼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본지 산업부 기자들의 학술모임인 ‘중앙 비즈니스(JB) 포럼’에서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 ‘개그’와 ‘경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우선 “좋은 형과 좋은 CEO 사이의 균형”을 자신의 경영기법으로 꼽으면서 CEO로서의 고민을 털어놨다. 소속 개그맨들에게 선배로 너그럽게 대할 것인가, CEO로서 긴장감을 줄 것인가를 둘러싼 딜레마다. 소속 개그맨의 TV 방송 출연료에서 회사 몫을 떼지 않기로 한 것이 한 예다.

 “아이디어 저작권을 인정하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극장 공연이나 행사는 제쳐두고 방송에만 출연하려고 하더군요.”

 당연히 CEO로서는 틀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사람을 얻는 법”이라고 했다. “좋은 CEO는 사람의 육신을 얻는 데 그치지만 좋은 선배는 그 사람을 영원히 얻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제일 좋은 것은 실패”라고 역설했다. 그에게 대학로 소극장은 실패를 배우는 곳이다.

 “월~금 날마다 공연하고 주말에는 하루 3회씩 무대에 섭니다. 관객이 웃지 않으면 실패죠. 웃기는데 실패해서 개그 바꾸기를 날마다 하다보면 마침내 토요일쯤엔 웃길 수 있게 됩니다.”

 그의 개그 동력은 실패 경험의 축적이었던 셈이다. 그는 반문했다. “개그맨은 돈 벌면서 실패하고 있는 거에요. 얼마나 획기적입니까.”

 또 한 가지 그가 강조한 것은 인재 영입. “옥동자 정종철에겐 하늘이 내린 재주가 있다”고 평한 그는 “파트너만 잘 만나도 굶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종철과 그는 ‘갈갈이 삼형제’로 KBS 개그콘서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현재의 회사를 함께 세웠다. 9년 전 ‘옥동자’의 명성을 접한 그가 삼고초려 끝에 정종철을 파트너로 ‘모신’ 결과다. 박 사장은 “개그나 사업이나,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이와 손 잡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그는 가장 공평한 세계”라고도 했다. 배우 장동건처럼 잘 생기지 않아도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작품의 질로 승부하는 때가 오면 극장에서 갈고 닦은 개그맨의 실력이 발휘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종합편성 채널의 등장은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시사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좌우 대립이 극심한 가운데서 줄타기를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27일에는 시사코미디로 극장에서 공연한다. 가제는 ‘좌파 우파 양파’.

 “양파를 들고 서 있으려고요. 이제 새 시장을 개척할 때가 왔지요. 언제까지 무만 갈 수 없잖아요.”

글=심서현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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