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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2006년 미국 ‘CBS 서바이버’ 우승자 권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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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버지니아주 매클린의 자택 앞에서 포즈를 취한 권율씨. 그는 늘 웃는 모습이다.

바야흐로 한국은 TV 오디션·공개 경쟁의 시대다. 노래와 춤 경연에서 수퍼모델, 아나운서 되기까지. 가수 오디션 바람을 일으킨 프로그램 ‘슈퍼스타 K’(Mnet)가 시즌 3에 들어가는 등 대한민국은 가히 ‘오디션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수많은 젊은이가 ‘스타 탄생’의 꿈을 안고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권율(36)씨를 떠올렸다. 한국계 미국인인 권씨는 2006년 CBS 방송의 리얼리티쇼 ‘서바이버(Survivor)’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두뇌와 강철 체력으로 우승해 상금 100만 달러(약 10억5000만원)를 거머쥐었다. 벼락 스타의 경험을 가진 그는 어떤 눈으로 한국의 현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달 26일(현지시간) 그가 사는 버지니아주 매클린을 찾았다.

-한국 소식은 들었나. TV 공개 경쟁 열풍이 대단하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많이 전해 듣고 있다. 고아로 자란 청년이 길거리 인생을 딛고 일어서 아름다운 노래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어렸을 적 나는 판타지소설을 많이 읽었다. 주인공이 어려움을 이겨 내고 영웅으로 재탄생하는 스토리가 좋았다. 이것은 현실의 판타지다.”

 -이런 열풍이 바람직한 걸까.

 “전통적인 방식으론 아무런 연줄이 없는 그 청년이 기회를 잡기 어려웠을 거다. 다양한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나에겐 우려가 더 크다.”

 -어째서 그런가.

 “유명세를 감당해 낼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그를 제대로 지켜봐 줄 부모와 가족이 없거나 스스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기초가 부족할 경우 유명세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서바이버’ 프로그램에 나갈 때 내 나이는 31세였다.”

미국 CBS방송 인기 리얼리티쇼 ‘서바이버’의 우승자 권율. 남녀 20명이 무인도에서 39일 동안 생활하며 각종 미션을 통해 우승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에서 권씨는 5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등을 차지해 상금 100만 달러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로이터=뉴시스]



 -당신이야말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인물이다. 무엇이 우려된다는 것인가.

 “‘벼락 유명세(15 minutes of fame)’의 끝은 대체로 좋지 않다. 내가 보기엔 한 사람의 인생에 건설적(constructive)이기보다 파괴적인(destructive)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감당해 내면서 본래의 자신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신은 경험에서 무엇을 봤었나.

 “서바이버 프로그램을 예로 들겠다. 그녀는 전도유망한 치과대학 학생이었다. 실제론 똑똑하고 성격도 괜찮았다. 그러나 TV 화면 속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찍혔다. 수많은 비아냥과 놀림, 심지어 살해 협박 메일까지 날아왔다. 그는 이를 견뎌 내지 못했고 학교마저 포기했다. 반면 히스패닉계 남성은 본래 일정한 직업 없이 파도 타기나 하면서 빈둥빈둥 놀던 친구였다. 포르노영화에 출연했던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TV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그는 인기를 얻었다. 서바이버 시리즈에 계속 출연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그렇지만 노래 부르기가 꿈인 사람, 아나운서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수 있겠나.

 “TV의 영향력은 무섭다. 그러나 TV에 출연하는 게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목표·비전을 달성하는 길 위에 TV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서바이버에 출연한 것은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한국계를 포함해 미국 내 소수민족의 어려움을 더 잘 알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가 전한 사연은 이렇다. 중·고·대학교의 ‘절친’(중국계)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골수 이식에 직접 나섰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아시아계의 도움이 절실했다. 학교를 관두다시피 하고 기증자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무관심했다. 친구는 1년 만에 숨졌다. “내가 아시아계가 아니었다면, 내가 유명 인사였더라면 이런 불행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유명해져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다짐 후 서바이버 제의가 들어왔다.)

 -사람은 본래 자기가 변하는 걸 잘 알 수 없지 않나. 유명해진 뒤에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일 수 있다.

 “맞다. 그렇지만 내 경험에서 보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비결이 있다. 유명세를 잘 활용해 남을 돕는 데 써라. 그러면 자신의 처음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어떤 경험을 말하는가.

 “서바이버 출연 당시 나는 좋은 직장인 구글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승 이후 연락이 쇄도했다. 서바이버 후속 시리즈에 출연해 달라 했고, CF 광고 제안도 들어왔다. 내 이야기라 쑥스럽지만 나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구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본래의 나를 되찾기 위해 그 후 2년 동안 비영리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미국 내 소수인종을 위한 골수 이식 캠페인을 벌였다. 상금 100만 달러 중 50%는 세금으로 냈고 30%는 자선단체에 기증했다.”

 (권씨는 지금까지 50회가 넘게 골수 기증을 했다. 정기적인 골수 기증은 그가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 건장한 몸매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그를 찾으면 박애주의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삶의 목표는 무언가.

 “우선은 9개월 된 딸에게 좋은 아빠,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다. 한인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최근 노·장·청을 망라해 미국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인사들을 한데 모으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변호사 → 입법보좌관 → 오바마 캠프 → FCC 부국장

권율(36)은 1975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 유학 왔던 아버지가 캘리포니아주에 정착하면서 로스앤젤레스(LA)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탠퍼드 대학과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실력파다.

로펌 변호사, 조 리버먼 상원의원 입법보좌관, 연방 항소법원 판사 시보, 맥킨지 경영컨설턴트, 구글 전략담당 등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 대선 캠페인에 참여했고,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연방통신위원회(FCC) 소비자보호 담당 부국장으로 일했다. 올가을 미 공영방송 PBS에서 방영될 신규 프로그램의 호스트를 맡아 미 전역을 돌며 준비 중이다. 중국계 미국인 아내 소피와 9개월 된 딸이 있다.


“승자가 돼 아시아인 저력 보여주고 싶었다”
서바이버 결선 ‘최후의 변’

‘서바이버’는 미 CBS방송의 인기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경쟁하고, 배심원들이 리더십·판단력·지식·체력·협동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권율은 2006년 뉴질랜드 쿡 아일랜드 섬에서 진행된 시리즈에서 최후의 월계관을 썼다. “어릴 적 TV 속의 황인종은 늘 웃음거리로 그려졌다. 승자가 되면 아시아인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당시 그의 최후의 변이었다.

이 게임은 ‘인종 대결’로도 불렸다. 아시아·백인·흑인·라틴계가 5명씩 부족을 이뤄 옷 한 벌과 신발 한 켤레만 들고 39일간의 생존 싸움에 뛰어들었다. 권씨는 한국계 이설희(변호사)씨 등과 푸카 부족으로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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