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가짜출장비’로 비자금 만든 에너지평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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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경제부 산하 에너지기술평가원(원장 이준현·사진)이 허위출장명령서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20개월 간 3000만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들은 한꺼번에 거액을 빼돌리면 꼬리를 밟힐 것을 우려해 곗돈을 붓듯 소액으로 나눠 다달이 연구비를 횡령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3주에 걸친 기관감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비자금의 용처를 확인 중이다.

 28일 감사원과 평가원에 따르면 비자금 조성은 기관 설립 넉 달 만인 2009년 9월 시작됐다. 당시 평가원의 김모 실장이 각 본부장과 팀장들에게 추석과 국정감사 때 선물 구입 등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현금 1000만원을 조성해 상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평가원의 한 관계자는 “팀별로 허위 출장명령서를 작성한 뒤 직원 계좌에 입금된 출장비를 인출해 팀별로 모으는 방법이 동원됐다”며 “일부 팀에서는 한 사람이 일주일에 세 번씩 출장간 것으로 꾸미기도 했다”고 전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같은 해 10월에도 국감 활동비가 필요하다며 300만원 갹출 지시가 내려졌으며 같은 방식으로 자금이 마련됐다. 지난해 5월부터는 한번에 목돈을 마련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매달 팀별로 10만~30만원씩 곗돈을 붓듯 돈을 모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2000만원가량이 추가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팀은 출장비 유용으로 윗선에서 요구한 상납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모아 팀비를 만들어 사용한 장부가 감사 과정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팀장이 부당한 자금 조성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기도 했다. 반발한 팀장들은 비자금 조성에서는 빠졌지만 조직개편 명목으로 대규모 인사를 하면서 한직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평가원은 설립 2년 동안 대규모 조직개편을 세 차례나 실시했다.

 감사원은 현재 허위 출장 등의 방식을 통한 자금조성 내역은 대부분 확인한 상태다. 하지만 자금 사용내역은 아직 밝히지 못하고, 검찰에 수사의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현철·이철재 기자

◆에너지기술평가원=에너지 관련 연구개발(R&D) 과제와 연구비를 관리하기 위해 2009년 5월 설립됐다. 평가원이 집행하는 연구비는 한 해 9700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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