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농산물 파워 브랜드 ‘뭉쳐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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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농촌에서 브랜드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가요?” “브랜드으…? 허허, 그게 영어지라?”

 전남 담양의 멜론 농민 김재욱(54)씨는 브랜드란 단어를 몰랐다. “나가 가방끈이 짧소”라며 또 허허, 웃었다. 질문을 꺼낸 기자는 민망해졌다. 그는 ‘K멜론’이라는 전국 연합 멜론 브랜드로 2년째 멜론을 출하하고 있다. 그렇지만 K멜론이 자기 농산물에 대한 ‘브랜드’라는 건 몰랐다.

 브랜드라는 단어는 몰라도 그가 아는 것은 있다.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그의 멜론에는 ‘K멜론’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멜론 당도가 12브릭스를 넘으면 K멜론으로 출하하고, 그러면 한 상자당 가격이 3000~4000원 올라간다. 이전엔 그에게 이런 것을 보장해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운이었다. 운이 나빠 시장에 멜론이 한꺼번에 출하되면 애써 키운 멜론을 한 통에 1000원 받고 팔기도 했다.

 브랜드는 무엇인가. 농민에겐 ‘내 농산물에 제값을 매겨주는 딱지’다. 소비자에겐 ‘믿고 살 수 있는 농산물의 증명서’다. 이게 바로 브랜드의 의미라면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의미의 농산물 브랜드가 거의 없다. 전국에 농산물 브랜드는 5340개, 쌀 브랜드는 1548개나 되는데도 그렇다. 1548개 쌀 브랜드 중 소비자 인지도가 5%를 넘는 브랜드는 단 세 개다. 너무 잘게 쪼개져 자기들끼리만 치열하게 경쟁한 탓이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모르니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과실도 없다. 결국 브랜드를 만드는 이들만 신이 나는 형국이다.

 무엇이 ‘파워 농산물 브랜드’인가. 농민에게 도움이 되는 브랜드,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브랜드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3회에 걸쳐 ‘파워 농산물 브랜드’ 기획을 준비하며 돌아보니 다른 목적을 지닌 브랜드가 너무 많았다. 자기 고장을 알리기 위해 만든 브랜드, 유통업체가 편의상 만들라고 시킨 브랜드들이 그것이다. 브랜드 지원 예산이 시·군 지자체에서 나오다 보니 지역경계도 넘을 수 없었다.

 답은 하나다. 뭉쳐야 산다. 전국의 농민을 품목별로 모아야 품질관리가 된다. 전문성이 생긴다. 전국의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보조금 삭감으로 존폐 기로에 섰다 똘똘 뭉쳐 ‘제스프리’라는 브랜드를 만든 뉴질랜드 2700여 키위 농가가 좋은 예다.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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