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아리는 미륵불·아미타불 합친 고유 지명인데 …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정부가 추진 중인 새 도로명 주소에 불교계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불교계의 심사가 불편하다. 사찰 이름이 새 주소에서 사라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교계의 우려는 지명에 담긴 문화적 전통과 역사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데 있다.

27일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겸 대변인 정만(正滿) 스님은 “우리가 무심코 써왔던 마을 이름과 산 이름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 스토리 속에는 살아 숨 쉬는 역사와 민족적 전통이 있다. 그건 우리가 후대에 전해줘야 할 소중한 무형적 자산이다 ”고 말했다.

 이런 불교계의 불만에 박호석(사진) 전 농협대 교수가 최근 『불교에서 유래한 상용어 지명 사전』(불광출판사)을 출간하며 ‘실탄’을 제공했다. 4년에 걸쳐 전국의 마을 이름과 산 이름을 훑으며 지명에 담긴 불교적·역사적 배경을 조사했다. 26일 인사동에서 만난 박 교수는 “우리가 무심코 쓰던 지명에도 굉장히 깊은 역사문화적 배경이 숨어 있다”며 “인사동이 왜 인사동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에 큰 절이 있었다. 그게 흥복사(興福寺)다. 세조 때 불교 경전 ‘원각경’을 봉안하면서 절 이름을 ‘원각사’로 바꾸었다.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던 ‘관인방(寬仁妨)’과 큰 절이 있어 불렀던 ‘대사동(大寺洞)’이란 이름을 합해 ‘인사동(仁寺洞)’이 되었다. 이처럼 지명(地名)에는 꿈틀대는 역사가 숨어 있다. 새 주소로 인해 그런 역사적 의미가 훼손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박 교수는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미아리가 왜 미아리인지 아는가?”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옛날 그 지역에 불당(佛堂)골이란 부락이 있었다. 거기에 ‘미아사’란 절이 있었다. 미륵불(彌勒佛)의 미(彌),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아(阿)자를 따서 ‘미아사(彌阿寺)’가 됐다. 미아리란 지명도 거기서 나왔다.” ‘청량리’도 신라 말에 창건한 청량사(淸凉寺)란 사찰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종로구 연지동(蓮池洞), 은평구 신사동(新寺洞)과 불광동(佛光洞), 동작구 사당동(舍堂洞), 강동구 암사동(岩寺洞), 성동구 도선동(道詵洞) 등도 불교 관련 지명이다.

 서울뿐만 아니다. 전국의 불교 관련 지명은 550여 개에 달한다. 새 주소가 시행되면 지명에 담긴 그런 역사적 무게감도 덩달아 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새 도로명 주소로 인해 130여 개의 불교 관련 법정 지명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