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국 ‘4-2-1 가정’ 의 풍경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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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인구(人口), 중국 경제의 최고 성장동력이다. 저임 노동력은 중국을 ‘세계 공장’으로 만들었고, 그들이 구매력으로 무장하면서 세계 공장은 ‘세계 시장’으로 변했다. 그러나 많으면 많아서 걱정, 적으면 적어서 걱정인 게 바로 인구다. 중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에 살고 있는 후쥔(胡軍·34)은 외국 투자회사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인생의 최고 전성기,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노예’라고 말한다. 수입의 절반가량을 주택자금 대출 상환에 쏟아부어야 하는 ‘집의 노예(房奴)’다. ‘작은 황제(小皇帝)’인 아들에게 쩔쩔매는 ‘자식의 노예(孩奴)’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족쇄가 하나 더 채워졌다. 부모 부양에 매달려야 하는 ‘노인의 노예(老奴)’ 신세가 된 것이다.

 2~3년 전 은퇴한 그의 부모는 지금 별일 없이 쉬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 노인들이 그렇듯 벌어놓은 것 없이 노후를 맞았기에 자식에게 의존해야 할 처지다. 문제는 후쥔이 부양해야 할 부모가 또 있다는 데 있다. 장인·장모가 그들이다. 아내 역시 외동딸인지라 난징 교외의 시골에서 살고 있는 장인·장모도 언젠가 모셔와야 할 형편이다. 부부 2명이 4명의 부모와 1명의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요즘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4-2-1가정’의 전형이다.

 1978년 시작된 ‘1가구 1자녀 정책(計劃生育·계획생육)’이 낳은 현상이다. 이때부터 출생률이 떨어졌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2명의 부부가 4명의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가정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노령화 속도는 빠르다. 현재 15.26%인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30년 24%, 2050년에는 무려 33%에 이를 전망이다. 더 많은 ‘노인 노예’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위로는 부모 모시랴, 아래로는 소황제 모시랴 후쥔의 허리가 휠 지경이다.

 ‘계획생육’의 더 큰 문제는 노동력 급감이다. ‘소황제’로 자란 젊은이들이 힘든 공장을 꺼리면서 매년 설 연휴가 끝나면 선전((深圳), 상하이(上海), 칭다오(靑島) 등에서는 여지없이 구인 전쟁이 벌어진다. 광둥성에서만 약 200만 명이 모자란다. 13억4000만 인구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공황(民工荒·노동자 부족)’ 현상이다. 게다가 2016년부터는 절대 노동력이 줄어들게 된다. 세계 공장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 경제에도 부담이다. 노동력 부족 및 이로 인한 임금 인상 등으로 야기된 중국 인플레는 지금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중이다. 계획생육 정책으로 인한 중국 인구구조 변화가 세계 경제에 거대한 충격파를 던질 수 있다는 얘기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위기(차이나 리스크)’ 요인으로 부정부패, 빈부격차, 소수민족 갈등 등을 꼽는다. 그러나 이는 인구 문제에 비하면 찻잔 속 작은 물결에 불과할 뿐이다. 인구로 흥(興)한 중국 경제는 바로 그 인구로 인해 쇠(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쥔 가정의 ‘4-2-1 구조’는 그 현실을 보여주는 작은 풍경화일 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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