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 민주당 선심성 공약 사과, 반면교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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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 최고지도자와 집권당 간부, 내각의 장관들이 줄줄이 나서서 2년 전 총선거 때의 ‘뻥튀기 공약’에 대해 사과하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다. 어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2009년 총선 공약에 대해 “재원(財源) 문제를 가볍게 봤다. 불충분한 점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집권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도 전날 “솔직히 사과 드린다”며 몸을 낮췄다. 간 총리에 이어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 겐바 고이치로 국가전략담당상 등 각료들의 사과 발언이 잇따랐다. 민주당이 재작년 총선에서 내건 어린이수당 지급, 고교수업료 무상화, 농가 호별 소득보상, 고속도로 무료 통행 등 선심성 공약들이 선거에서 어떻게든 이기고 보자는 포퓰리즘의 발로였다는 점을 사실상 자인한 셈이다.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은 우리 정치권은 일본 집권세력의 치욕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마땅하다. 당장 입에 달다고 해서 ‘현찰 뿌리기’식 공약에 혹해 표를 던진 결과가 어떠한지 국내 유권자들도 똑똑히 지켜보기 바란다.

 일본 민주당의 이례적인 사과는 직접적으로는 야당인 자민당의 압박에 따른 것이다. 자민당이 적자국채 발행 법안 통과에 협조하는 대가로 사과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스스로도 이미 선심성 공약 재원 마련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올 1월 ‘사업들을 재검토해 필요성이 낮은 것은 삭감·폐지한다’고 결정했다. 어린이수당을 당초의 절반으로 줄인 데 이어 최근에는 소득수준별로 차등 지급하는 방안이 다시 논의 중이고, 고교수업료 무상화·농가호별 소득보상 정책도 재검토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요즘 우리 정당들의 ‘퍼주기 경쟁’을 보노라면 일본은 그나마 통이 작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 민주당이 연초에 내건 ‘3+1(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 데는 16조4000억원(민주당 추산)에서 48조6000억원(한나라당 추산)이나 든다고 한다. 막대한 금액도 금액이지만, 소득에 따른 단계적 등록금 지원을 주장하던 야당 대표가 촛불집회에 한 번 다녀와서는 ‘대학생 전원에 지급’으로 돌변하는 판국이니 더 불안한 것이다. 더구나 명색이 집권당인 한나라당도 ‘우파 포퓰리즘’이니 뭐니 하며 나대고 있다. 선심경쟁에만 정신을 쏟으면서 건강보험 개혁, 사용후 핵연료처리장 입지 선정 등 시급한 국가적 현안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관련 사과 등 우리도 잘못된 공약에 대해 사과를 한 전례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역시 사탕발림에 속지 않는 유권자들의 냉철한 판단력이다. 중앙선관위가 법제화를 추진 중인 매니페스토(공약 사전검증) 제도도 속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공약에 소요되는 예산과 재원조달 방법을 선거 전에 철저히 검증하도록 의무화하면 뻥튀기 공약이 많이 걸러질 것이다. 일본 집권당의 수모를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