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없는 칡냉면’ 판 식당·제조업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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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서 9년째 칡냉면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55)씨. 박씨는 3월 초 서울의 한 유통업체에 주문한 칡가루가 일주일이 자나도록 도착하지 않자 고심했다. 과거 중국집 주방장과 사장으로 15년 이상 일한 박씨는 칡가루를 넣지 않고 칡냉면을 만들기로 했다. 그는 함흥냉면을 삶을 때 나오는 거무스름한 빛깔의 물을 떠놨다가 함흥냉면가루를 반죽할 때 다시 넣었다. 칡냉면 특유의 검은 빛깔을 내기 위해서다. 겉모습만 봐서는 칡냉면이었다. 일반 함흥냉면가루로 만든 냉면이 칡냉면으로 변신한 것이다.

 박씨는 ‘짝퉁’ 칡냉면을 한 그릇에 6000원씩 총 2572그릇(1540만원 상당)을 팔았다. 하지만 칡냉면이 너무 쫄깃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손님들에 의해 꼬리가 밟혔다. 칡가루는 찰기가 없어 1%만 넣어도 면이 끊긴다는 점을 간과한 채 지나치게 완벽하게 면을 뽑은 것이다.

 여름철 대표 식품인 칡냉면의 칡 함량을 속이거나 칡을 사용하지 않은 식당과 제조업체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광주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은 가짜 칡냉면을 판 박씨의 식당과 전국의 제조업체 7곳 등 총 8곳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적발된 업체들은 칡냉면의 검은 색깔을 내기 위해 메밀이나 코코아 가루를 넣은 칡냉면을 시중에 대량 유통시켰다.

 충남 예산의 T식품은 칡을 전혀 넣지 않거나 2.8%만 쓰고도 제품에는 ‘칡 5%’라고 표시해 3만1900여 봉지(1억2000만원 상당)를 팔았다. 지역별로는 경기 2곳, 충남 2곳, 전북 2곳, 경남 1곳이 적발됐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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