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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정보공개 실질적 도움에는 회의적

중앙일보

입력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의 연구결과를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한다는데 합의한데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일단 한숨을 돌릴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면서도 현실적인 이득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우리나라는 올 들어서야 과학기술부가 주도하는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의 하나로 인간유전체사업단을 본격 발족시키는 등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생명공학분야에서 한참 뒤처진 상태.

미.영 두 정상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국내 과학자사이에서는 게놈연구결과의 공개원칙이 우리나라와 같은 제3국에 실질적 도움을 주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지난 90년 15년간의 연구프로젝트로 게놈연구에 본격 착수했던 미국립보건원(NIH)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국제게놈연구팀이 이런 공개원칙을 준수한다 해도 이미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온 민간 기업의 인간유전자관련 특허신청에 제동을 걸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9-10월 일본 헬릭스연구소와 미국 셀레라사는 각각 인간 유전자 6천여개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미국 벤처회사 인사이트사도 지난해말 356건의 유전자특허를 신청했다.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과 정부연구소의 인간유전자관련 특허출원은 100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 두 단어를 합성한 게놈이란 용어는 생물에 담긴 유전정보 전체를 의미한다. 인간 유전자 수는 10만여개로 추정되고 있는데 기능이 밝혀진 것은 약 9천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게놈이 완전 해독되고나면 나머지 9만여개의 유전자 기능을 규명하는 작업이 본격화돼고 이 과정에서 기업과 연구소들의 유전자 특허 경쟁이 불을 뿜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유전자정보에 관한 특허권을 선점하는곳은 세계 각국의 제약회사와 사설연구소로부터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일부 과학자들이 게놈연구결과의 공개원칙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두달후 인간의 30억개 염기서열을 담은 유전자지도의 초안이 발표된다해도 각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는 핵심작업에서 역시 미국이 앞서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하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소의 이대실박사는 "30억달러의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 연구결과를 세계가 공유하게 된다는 것은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이런 1차 정보를 가공해인간의 질병치료등에 실용화하는 단계에서 미국의 연구소와 기업들이 특허권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블레어-클린턴 성명도 게놈 연구의 주체들이 기초자료들을 무료로 공개해도 기초 자료를 이용한 발명에 대해서는 특허를 얻을 수 있게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박사는 "1천쪽짜리 책 200권 분량의 방대한 유전정보를 해독해 유전자치료, 의약품 등으로 실용화할 수 있으려면 유전정보해석력, 정보가공력, 기능분석력 등이 뒷받침이 돼야하나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런 분야가 황무지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미 NIH에는 의미있는 유전자정보를 캐내 이를 컴퓨터앞에서 가공할 수있는 능력을 겸비한 생물정보 전문가가 300-400명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유전자 정보와 컴퓨터를 두루 다룰 줄 아는 생물정보학 박사가 채 5명도 못된다는 것이다.

또 유전자지도에 담긴 정보를 해독하려면 무엇보다 수퍼컴퓨터등의 장비확보가 필수적인데 우리나라에는 정보처리능력에서 경쟁력을 갖는슈퍼컴이 한대도 없다는것.

민간업체인 셀레라사는 세계에서 정보처리용량이 1-2위인 슈퍼컴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우리나라 생명공학연구소가 갖고있는 슈퍼컴에 비해 100배의 빠른 정보처리능력을 갖고있다.

이밖에 게놈연구결과를 사람대신 적용할 수 있는 우수한 모델동물의 연구도 국내는 일천한 단계다.

이박사는 "게놈연구결과의 공개원칙을 감사해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방대한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초고속 슈퍼컴퓨터의 확보, 인간유전자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정보분석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생물정보전문가양성, 유전자기능분석프로그램개발등의 구체적 방안이 시급히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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