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이래 봬도 내가 예전에 한가락 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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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래봬도 백수의 제왕 사자야. 주둥이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요 모양 요 꼴이 됐지만 왕년엔 말이야, 좀 산다는 집 대문은 내가 지켰어. 내가 손잡이 입에 물고 대문에 딱 붙어 있으면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못했다고.

 그때가 참 좋았어. 대문이 달린 집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서는 더 이상 내가 필요 없게 됐으니까. 나도 그 정도는 알아. 내가 매끈한 아파트 현관문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 동네에 아파트가 한 동 두 동 올라갈수록 우리는 하나 둘 고철상에 끌려가고 말았어. 요즘은 디지털 도어록이 잘 나간다고 하더군. 그런데 디지털 도어록 삑삑거리는 소리보다 덜컹 끼익 철문 열리는 소리가 더 정겹지 않아?

 근데 아까부터 사진기 들고 앞에서 알짱거리는 얜 누구야? 거, 자꾸 신경 쓰이네. 나 기분 영 아니니까 어서 사라져 줄래?

김성룡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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