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 논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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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가격 저렴한 업체를 고르는 것은 시장원리의 기본이다. 민간에는 익숙한 이 원리가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한 300억원 미만의 공사에서는 잘 안 통한다. 시장원리에 맞는 최저가낙찰제는 1999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됐고 현재 300억원 이상 공사에 적용되고 있다. 내년부터 100억원 이상 모든 공사로 확대된다. 이걸 막기 위해 건설업계와 국회가 2인3각으로 기획재정부를 몰아붙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를 비롯한 건설 관련 15개 단체는 12일 전국의 건설 근로자 등 모두 12만1707명의 서명을 받아 최저가낙찰제의 확대 계획 철회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재정부 등 9개 정부기관에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탄원서에서 “수주물량 감소,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 수익성 악화 등으로 건설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최저가낙찰제를 내년부터 확대하면 건설업계의 경영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최저가낙찰제가 중소형 공공공사로 확대 적용되면 대형 건설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 중소업체는 물론 지역 연관산업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국회도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최저가낙찰제의 확대 계획을 철회하거나 유보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의결했고, 동반성장위원회도 정부에 최저가낙찰제 확대 철회를 건의하기로 했다. 지난 5월 박재완 재정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관련 질의가 나왔다. 박 장관은 당시 “예정대로 최저가낙찰제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현재 300억원 미만의 공공공사에는 최저가입찰제가 아닌 적격심사제가 적용된다. 기술 능력에 차이가 없을 경우 공개되지 않는 예정가격의 입찰 하한선인 80%를 웃돌면서 80%에 가장 가까운 가격을 써낸 업체가 ‘당첨’되는 구조다. 이런 점에서 입찰 결과가 운에 따라 결정되는 ‘운찰제(運札制)’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최저가입찰제를 1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하면 예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인 낙찰률이 하락해 매년 5000억원 안팎의 공사 예산이 절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이만큼의 ‘정부 보조금’이 보이지 않게 건설업계로 흘러들고 있는 셈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는 예산 절감 규모를 1조2000억원까지 보고 있다. 경실련은 “ 최저가낙찰제를 포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라 살림을 축내 일부 건설업체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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