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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신흥 'e 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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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선 인트라넷 전문업체인 버추얼텍의 서지현 사장(35) . 서사장은 94년 자신이 설립한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되면서 일약 백억원대의 자산가로 떠올랐다. 물론 자신이 가진 주식을 다 팔아야 들어올 돈이긴 하지만 코스닥에서 연일 상한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요즘 돈 불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코스닥 시대, 벤처의 시대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신흥 갑부의 모습이다. 벤처기업의 사장들이 부를 축적하는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일단 코스닥에 등록하게 되면 주가가 얼마나 높게 형성되는가에 따라 부(富)가 쌓여간다.

공모가 산정에서부터 등록 후 주식 거래에 이르기까지 주식시장에 의해 갑부가 탄생하고 또는 망하기도 한다. 아직 벤처 기업들의 M&A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어 기업을 통째로 팔고 그 이익을 챙기는 경우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 역시 조만간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될 전망이다.

국내 벤처 기업들 중 주식 평가이익이 가장 큰 것으로 자주 보도되고 있는 곳은 다음커뮤니케이션즈, 새롬기술, 로커스 등 세 곳이다.

무료 E메일 제공업체로 출발해 포털서비스를 하고 있는 다음은 지난해 11월 코스닥 등록후 무려 한 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상한가를 계속해 화제를 모았었다.

올 1월 최고 4백만원(액면가 5천원 기준) 까지 주가가 오르면서 20% 가량의 주식을 보유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사장(32) 은 순식간에 2천5백억원이 넘는 갑부로 둔갑하기도 했다.

새롬기술의 오상수 사장(35) 역시 신화의 주인공이다. 무료전화 다이얼 패드로 잘 알려진 새롬기술이 코스닥에서 한때 2백40만원대를 웃돌면서 3천억원이 넘는 자산가로 등장했다.

컴퓨터·전화종합사업을 벌이는 로커스의 김형순 사장(39) 역시 수천억원대의 부자로 떠올랐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의 이기형 사장(37) 역시 코스닥 상장으로 3백억원이 넘는 자산가 반열에 올라섰고, 한글과컴퓨터의 전하진 사장(42) 도 마찬가지다.

벤처기업가들의 부(富)가 당장 주머니에 현금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회사의 미래가치와 연관된 주식 평가이익인 반면, 오늘날 실제 ''떼돈’을 번 사람들은 다름아닌 벤처기업에 돈을 대주는 벤처투자가들이다.

이들은 창업단계 벤처기업의 초기 자본금 모집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비록 소액일지라도 프리미엄이 1대 1, 혹은 2대 1로 투자를 하면 순식간에 대주주로 부상할 수 있고, 코스닥 안착에 성공할 경우 돈을 ''긁어 모으게'' 되는 경우다.

명동에서 사채업 사무실을 내고 있는 P씨. 그는 요즘 유망 벤처를 발굴해 투자하는 엔젤로 활발히 활동중이다. 한때 대기업에 다니던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이 많아 여유돈을 굴려오다 5년 전 명동에 사무실을 냈다. 주식투자에 있어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현재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다.

벤처 기업 투자에 손을 대면서 평소의 정보력을 십분 발휘, 그는 명동에서도 벤처업계 ''소식통’으로 통한다. 증권사들의 펀드매니저들조차 그에게 문의 전화를 해 올 정도. P씨는 "명동에는 벤처에 투자하는 사채 회사들이 꽤 많다"며 "투자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직접 명동을 찾는 벤처기업가들도 많다"고 말했다. P씨는 최근 창업초기에 5%의 지분을 참여한 C업체가 코스닥에서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수십억원을 벌어들였다.

한국기술투자의 서갑수 사장은 "자금 동원력이 큰 일부 개인투자자, 사채업자들이 벤처에 직접 투자해 큰 돈을 번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사장은 또한 "이들은 단기에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히트 앤 런’작전을 구사하기 때문에 결국 소액투자자들만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사채업자들뿐 아니라 자금력이 있는 중소 기업 사장, 부동산업자 등 과거 ''알부자’소리 듣던 사람들도 벤처투자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들은 주로 알음알음으로 벤처 기업 주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때에 따라서는 높은 프리미엄도 마다 않는다. 자금력이 충분한 만큼 여러 회사에 투자해 두고 한 곳이라도 ‘대박’이 터지길 노리는 것이다.

전자제품 역경매업체인 예쓰월드의 이상길 이사는 "벤처기업 설립시 엔젤로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금력이 막강하고 인맥이 많은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자신들이 구축하고 있는 정보 네트워크를 이용해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투자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자금력뿐 아니라 얼마나 유력한 정보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부가 결정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이사는 또한 "일반인들이 엔젤 클럽을 통해 소액이나마 투자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들이 들어갈 때쯤이면 이미 투자매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정보통신 주가가 급등하면서 우리사주를 통해 갑부까지는 아니더라도 5억~10억원대의 재산을 모으게 된 샐러리맨들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한국통신프리텔, 한솔CSN, 새롬기술, 다음의 직원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통프리텔은 정식직원 8백여명이 모두 2천~5천주씩 우리사주를 보유해 1억~5억원의 부자가 됐다. 새롬기술이나 다음의 직원들도 비록 장부상 이익이긴 하지만 평균 수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올리고 있다.

우리사주의 경우 당장 지분을 매각할 수는 없고 최소한 1년 이상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향후 주가의 변동 추이에 따라 부의 정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지만,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주가가 강세일 때 회사를 그만두고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어차피 정보통신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은 만큼 당장 그만두더라도 일자리 구하기는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 갑부의 신화를 이뤄 나가는 또다른 그룹으로 펀드매니저, 컨설턴트 등 억대 연봉자들을 들 수 있다. 자신의 지식과 아이디어의 정당한 대가로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지만 디지털 시대의 바뀐 패러다임이 낳은 또하나의 신흥 귀족임에는 틀림없다.

미국계 컨설팅사인 A사에서 일하고 있는 L(32) 씨.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딴 뒤에 컨설턴트로 입사한 그의 연봉은 1억5천만원. 최근 그는 홍콩에 있는 한 투자은행으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고 있다. 그에게 제시된 연봉은 현재 받고 있는 액수의 두 배. 하지만 그는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그는 "지금은 1백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변혁기"라며 "디지털 세상 진입 초기의 혼란스러운 지금이 떼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돈이 되는 세상-. 정보력과 지식, 아이디어로 무장한 ''e엘리트’들이 21세기 신흥 귀족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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