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의 과학 산책] 암수 왜 나뉘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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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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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

현대 생물학의 대표적인 미해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암컷과 수컷, 즉 성(性)이란 것은 왜 존재하는가? 1982년 캐나다의 진화생물학자 벨(Graham Bell)은 성의 존재 이유를 생물학 문제의 ‘여왕’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스스로를 그대로 복제하는 무성생식을 하면 유성생식보다 두 배 빨리 후손을 퍼뜨릴 수 있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식물, 동물, 균류는 암수가 있는 유성생식을 하고 있다. 도대체 유성생식의 어떤 장점이 ‘번식률 두 배’라는 무성생식의 유리함을 능가할 수 있는가.

 분자생물학자들은 성이 손상된 유전자를 복구하기 위해 창조됐다고 주장한다. DNA 가닥은 햇빛이나 화학물질 탓에 끊임없이 손상된다. 부모의 다른 한쪽으로부터 물려받은 또 다른 가닥이 있다면 이를 참조하여 수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성의 목적인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유전학자들은 성이 나쁜 돌연변이를 제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연변이 발생률이 아주 높지 않은 한, 유성생식 집단은 무성생식 집단의 엄청난 번식력에 밀려서 도태될 것이다.

 생태학자들은 ‘복권 추첨’ 모델을 제시했다. 다양한 자손을 낳으면 이 중 일부는 새로운 환경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뒤엉킨 강둑’ 이론도 있다. 주위 환경이 이미 부모와 유사한 개체들로 포화 상태라면 이들과 약간 다른 유전자를 보유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이론은 실제 조사 결과와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요즘 진화생물학자들에게 각광받는 것은 기생생물과 숙주가 끊임없이 군비경쟁을 하며 함께 진화한다는 ‘붉은 여왕’ 이론이다.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부 환경보다는 기생충이나 박테리아, 바이러스 같은 기생생물이라는 점이 요체다. 후손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부모가 기생생물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덕분이다. 하지만 기생생물 역시 부모의 방어체계를 뚫을 수 있도록 진화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후손은 부모와 약간 다른 유전자를 지니는 편이 유리하다.

 마침 이를 증명하는 논문이 네이처 최신호에 실렸다.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이 모두 가능한 벌레인 예쁜꼬마선충을 치명적 세균과 30세대 동안 함께 기른 실험이다. 그 결과 무성생식만 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집단은 멸종했고 유성생식만 하도록 조작한 집단은 살아남았다. 숙주와 기생생물 개체군이 함께 진화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결론. 생물학 문제의 ‘여왕’은 해법에 이른 듯하다. 남녀가 따로 존재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기생생물 덕분인 모양이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콘텐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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