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금리 서민대출, 포퓰리즘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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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대출금리를 시장에 맡기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김승유(사진)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은 거침이 없었다. 40년 넘게 한국의 대표 뱅커라는 명성을 쌓으며 시장과 이윤을 좇아온 은행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서민대출은 어차피 수요공급이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해 이자율이 결정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힘없는 저신용자를 시장에 그냥 풀어놓으면 일방적 관계가 돼 버린다”며 “정책당국자가 정책적인 배려에서 대출금리를 제한하는 걸 포퓰리즘으로 볼 순 없다”고도 했다. 2009년 2월 이후 2년5개월간 재단 이사장을 맡아온 그를 서울 을지로 하나금융지주 회장실에서 만났다.

 -하나금융 회장과 재단 이사장으로서의 모습이 꽤 다른 것 같다.

 “어떤 모자를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금융 회장으로) 모자를 바꿔 쓰면 철저하게 영리를 추구하지만 재단 이사장으로 일할 땐 공동체와 지속가능성을 고민한다.”

이른바 김 회장의 ‘모자론’이다.

 -두 가지 역할이 상충되진 않나.

 “길게 보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다. 저신용자를 제도 금융기관으로 유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둘을 섞어 놓으면 안 된다. 복지금융과 금융을 섞으면 둘 다 안 된다. 영역이 다르다. 금융이 더 많이 벌어서 좋은 일에 많이 떼어 쓰자는 생각이다. 그래야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고 금융산업이 선진화된다.”

 -미소금융을 시작한 계기는.

 “원래 평양에서 하려던 거다. 미소금융, 자영업을 지원하는 건 사유재산과 교환경제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그게 곧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1만 명에게만 그렇게 돈을 빌려 줘도 가족과 사회가 달라진다. 2007년 (북한에) 제안을 했는데 그쪽에서 안 되겠다고 했다. 돌아보니 한국에도 그런 관심이 필요했다. 상대적으로 손길이 덜 미치는 곳에 정부의 책임만을 묻지 말고 사회구성원들이 책임을 다하면 사회갈등의 요인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되고 있다고 평가하나.

 “대출 금액이 3000억원을 넘겼고, 연체율도 2.4%로 양호하다. 외국의 미소금융은 연체율이 8.2%다. 앞으로 올라가겠지만 5~6% 선을 유지할 수 있으면 지속가능성이 있다. 요즘 월 200억원가량이 나가니까 연말까지 1000억원 이상 더 대출할 수 있다.”

-금리가 너무 낮아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들에게 4.5%의 저금리로 돈을 빌려준다. 수요공급으로 보면 말이 안 되겠지만 복지 성격이 있다. 해외의 미소금융은 금리가 30% 넘는 데가 수두룩하다. 그런 금리론 자활할 수가 없다.”

 -정부의 접근방식에 아쉬운 점은 없나.

 “서민금융의 본질은 돈을 꿔주는 게 아니다. 저신용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컨설팅과 봉사다. 500만원이나 1000만~2000만원 갖고 자활할 수는 없다. 돈보다 노하우를 알려줘야 한다. 앉아서 하는 컨설팅뿐만 아니라 몸으로 가서 부닥쳐야 하는데 정부나 각종 지원기관 모두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사회와 산업·업종의 변화에 맞춰 저신용자들이 자활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주는 시스템과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기업도 돈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미국 웰스파고은행은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은행이었다. 하지만 자영업과 서비스 영역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갖췄다. 꾸준히 인구 변화와 사람·지역 등을 연구해 개인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해주다 오늘날 큰 은행이 됐다. 한국은 최고경영자(CEO)들의 생명이 짧다 보니 그렇게 길게 생각 안 한다. 적응력이 부족한 영세상인들에게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면 결국 은행과 기업에도 손해다. 따라서 미소금융을 돈이나 연체율로만 보면 안 된다. 각계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미소금융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 보인다.

 “절대적인 빈곤은 참지만, 상대적인 빈곤은 참기 힘들다. 상대적인 빈곤이 생기면 점점 더 사회 갈등이 커진다. 나도 있는 사람이고, 모든 걸 가진 사람이다. 우리 같은 사람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재산을 나와 내 자식에게 모두 물려줬을 때 그게 오래갈까. 그렇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나금융 회장) 임기 얼마 안 남았는데, 나중에 미소금융 봉사단에 가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각오도 하고 있다.”

나현철·김혜미 기자

미소금융은

■ 총대출액:3252억

■ 1인당 평균 대출액:800만원

■ 연체율:2.4%

■ 지점 수:121개

미소금융 지원대상은

■ 재산 1억3500만원(대도시), 8500만원(중소도시) 이하

■ 신용등급 7등급 이하

■ 대출금에 50% 이상 자기자금 보유(창업지원)

■ 지원금액:500만~5000만원

■ 대출금리:연 4.5% 이내

■ 상환기간:5년 자료:미소금융재단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하나금융지주 대표이사회장
[現] 휴면예금관리재단 이사장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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