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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를 읽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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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문학 위기론’만큼 자주 듣는 말도 없다. 3년 전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떠오른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얘기하며 한국을 사례로 들어 국내 문학판이 시끄러웠다. 1970∼80년대, ‘소심한’ 정치를 대신해 사회현실에 개입하며 번창했던 한국문학이 90년대 들어 정치적 발언권을 내준 뒤 쇠퇴했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위기론은 30여 년 전에도 있었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白手(백수)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져 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자기각성의 몸부림이다.’ 비장한 글이다. 평론가 김윤식과 고(故) 김현이 함께 쓴 『한국문학사』(1973년) 서문의 한 대목이다. 가라타니의 진단대로라면 문학이 가장 잘 되던 시기에 위기론이 일었던 것이다. 어떤 위기론은 과장 혹은 엄살인 것일까.

 요즘의 위기론은 문학의 난해함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난해함은 소설보다 시에서 두드러진다. 가뜩이나 시 독자가 줄어든 판에 문학과지성사·창비·민음사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출판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이 점점 읽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 번 뜨거운 맛을 본 독자는 조심하게 마련이다. ‘난해’가 ‘위기’를 재촉하는 일종의 상승작용이다. 오죽하면 서울대(국문과) 명예교수인 오세영 시인은 최근 일부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難解詩)를 “정신분열적”이라고까지 비판했겠는가.

 문제는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 선호가 질타로 해결될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어에 예민한 젊은 시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궁핍을 자초하면서까지 난수표 같은 난해시에 매달릴 게 뻔하다. 방법은 하나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야 한다. 난해시는 한편으론 한국 현대시를 풍성하게 하는 귀한 존재 아닌가.

 시인 K에게 난해시 감상법을 물었다. 그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정확하게 보기로 소문난 이다. 그에 따르면 난해 시집은 우선 ‘속독(速讀)의 대상’이다. 그는 실내자전거 위에라도 앉아 시집 전체를 30∼40분간에 걸쳐 빠르게 훑는다. 이때 무언가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으면 계속 읽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둔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시집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 단계를 통과했다면 다음은 각개격파. 시 한 편을 앞에 두고 어느 시간대인지, 장소는 어디인지, 시의 화자가 무언가에 쫓기는 상태는 아닌지 등 구체적인 시의 정황을 그려보려고 노력한다. 이게 잘 안 된다면 단어 하나하나를 소리 내 발음하며 의미가 분명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읽는다. 이렇게 해서 시 한 편을 온전히 이해한 후 다음 시로 넘어간다.

 K는 시집 한 권 읽는데 예닐곱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장편소설 한 권 읽는 시간이다. 시집이 어떤 기쁨을 주기에. “세계가 넓어지고 깨달음이 깊어진다”고 한다. 그의 감상법을 실천해보고 싶어진다.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