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반기문·멘케리오스, 193번째 나라 남수단 세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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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번째 독립국가가 된 남수단의 국민들이 9일(현지시간) 수도 주바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국기는 수단 내전 당시 남부반군이 사용했던 수단인민해방군기를 그대로 쓴다. 이 깃발은 인민·자유·평화·단결 등을 상징한다. [주바 AFP=연합뉴스]


“위대한 순교자들이여. 그대들의 피가 조국의 기틀을 세웠나니. 이제 우리 분연히 일어나 조국을 지키리라 맹세하네. 신이여 남수단을 지켜주소서.”

 9일(현지시간) 세계 193번째 독립국가로 거듭난 남수단 수도 주바. 존 가랑 기념광장엔 새 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어 남수단 국기가 천천히 올라갔다. 바로 옆에선 50년 동안 군림해온 수단 국기가 내려졌다. 환호와 춤으로 달아올랐던 광장은 숙연해졌다. 단상 맞은편에서 그 광경을 혼자 지켜보던 비타 마케(32)의 어깨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애써 참아온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는 2004년 주바에서 수단 정부군과 전투 도중 오른쪽 무릎 아랫부분을 잃었다. 마케는 “다리를 잃고 난 뒤 청춘도 날려버렸지만 내 생애 오늘처럼 기쁘고 자랑스러운 날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야 북수단도 용서할 수 있게 됐다”며 “진정한 화해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옆엔 역시 전투에서 오른팔과 왼손 손가락 네 개를 잃은 제임스가 친구와 감격의 포옹을 했다. 사람들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섭씨 40도에 육박한 살인적인 폭염조차 잊게 할 만큼 뜨거운 눈물이었다.

 이날 기념식장엔 이른 아침부터 30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전국에서 모인 수백 개 전통춤 공연단은 식장의 흥을 돋웠다. 마치 아프리카 영양처럼 껑충껑충 뛰는 춤에 구경꾼까지 어울려 광장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단상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30여 개국 정상이 축하사절로 참석했다. 흥청거리던 식장은 제임스 와니 을가 국회의장의 독립선언문 낭독에 이르자 절정에 달했다.

 오랫동안 총부리를 서로 겨눴던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Omar al-Bashir) 대통령과 살파 키르 마야르디트(Salva Kiir Mayardit) 남수단 대통령이 포옹하자 세계 각국 외교사절과 축하객은 양국의 미래를 축복했다. 수단은 가장 먼저 남수단을 국가로 인정했다. 한국도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이재오 특사를 통해 8일 남수단 정부와 외교관계 개설을 위한 의정서를 체결했다. 한국·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각국의 외교관계 설정 제안도 쇄도했다.

주바(남수단)=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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